(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최근 이사회에서 투어 운영 규정을 대폭 손을 봤다. 없던 규정을 새로 만들거나 있던 규정도 일부 개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신설 규정은 해외 투어 참가 제한이다.
KLPGA투어 대회와 같은 기간에 열리는 해외 투어 출전은 1년에 3회만 허용한다. 또 해외 투어 대회에 출전하느라 KLPGA투어 메이저대회에 빠져서는 안 된다.
최대 10경기 출장 정지와 최대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처벌 규정도 만들었다.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워낙 커서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다.
해외 투어 출전 제한 규정 신설은 KLPGA투어가 독자 생태계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신호탄이다.
각국 프로 골프 투어는 독자 생태계 구축에 혈안이다. 이게 실패하면 투어는 살아남지 못한다. 유럽여자프로골프(LET)는 독자 생태계 구축에 실패한 사례다.
KLPGA투어에서 가장 큰 숙제는 우수 선수의 해외 유출이었다. 역대 상금왕은 예외 없이 미국이나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하지만 우수 선수의 해외 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 막을 방법도, 명분도 없다.
KLPGA투어는 한때 우수 자원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고 2년간 KLPGA투어 활동 의무 규정을 만들었다가 거센 역풍을 맞은 아픈 기억이 있다.
KLPGA투어는 이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게 해외 투어 대회 참가 제한이다.우수 선수가 해외 투어로 무대를 옮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KLPGA투어 선수가 KLPGA투어 대회를 결장하고 해외 투어에 참여하는 건 가능하면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올해 상금왕 2연패를 달성한 이정은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정은은 올해 치러진 27차례 KLPGA투어 대회 가운데 10개 대회를 결장했다. 37%를 불참한 셈이다. 대신 이정은은 미국과 일본에 7차례 원정을 다녀왔다.
지난해 상금왕, 대상 등 개인 타이틀을 석권한 최고 스타의 불참에 대회 타이틀 스폰서의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물론 이정은은 잘못이 없다. 자신의 기량을 미국, 일본의 정상급 선수와 견줘보고 싶은 마음에서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을 뿐이다.
KLPGA투어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해외 투어로 무대를 옮기는 건 몰라도 KLPGA투어 소속일 때는 KLPGA투어에 어느 정도 전념해달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내년에 해외 투어 출전 제한 규정이 시행되면 이정은처럼 시즌 중에 수시로 미국, 일본으로 원정을 떠나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3차례 이상 가려면 KLPGA투어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가야 하는데 KLPGA투어가 시즌 내내 쉬지 않고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해외 투어 대회 출전 제한은 LPGA투어도 운용 중이다.
LPGA투어가 한 시즌에 3차례만 허용하고 4번이 넘으면 한 번에 1만 달러씩 벌금을 내야 한다.
KLPGA투어가 이번에 도입한 제도와 판박이다. JLPGA투어는 JLPGA투어 대회와 같은 기간에 열리는 해외 투어 대회는 시즌 내내 딱 한 번만 출전을 허용한다. 다만 LPGA투어 메이저대회 출전에는 제한을 두지 않아 KLPGA투어보다는 여유가 있다.
나가는 걸 억제하는 방안뿐 아니라 들어오려는 선수를 유인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KLPGA투어는 내년부터 LPGA투어와 J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대상으로 정규 투어 특별 시드권을 부여한다.
LPGA투어와 J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가운데 KLPGA투어 시드를 가진 선수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영구시드권자인 신지애(30), 이보미(30), 박인비(30), 전미정(36), 안선주(31), 이지희(39)를 빼면 최근 KLPGA투어 메이저대회 우승자 김효주, 전인지, 박성현 정도만 KLPGA투어 시드를 보유 중이다.
상당수 선수는 KLPGA투어에 출전하려면 초청 또는 추천을 받아야 한다.
KLPGA투어는 이런 선수들에게 심사를 거쳐 출전 자격 10번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특별 시드를 준다는 방침이다. 출전 자격 10번이면 전 경기 출전권이다.
LPGA투어나 JLPGA투어에서 국내로 유턴하려는 선수가 있다면 이 제도는 매력적이다.
지난해 LPGA투어 생활을 접고 국내로 복귀한 장하나(26)는 당시 KLPGA투어 시드가 살아 있었기에 수월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심지어는 한국인 선수가 아니라도 LPGA투어나 JLPGA투어에서 제법 괜찮은 성적을 낸 선수라면 이사회 심사를 거쳐 KLPGA투어 시드를 주는 길까지 열었다.
효과는 미지수다. 하지만 길이 아예 없는 것과 있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KLPGA투어의 해외 투어 대회 참가 제한은 더 큰 무대로 나아가려는 선수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박성현(26)은 6차례 LPGA투어 대회에 참가해 68만 달러의 상금을 모은 결과 LPGA투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박성현 방식의 LPGA투어 진출은 실현되기 어렵다.
이정은은 퀄리파잉스쿨을 통해 LPGA 투어카드를 땄지만 6차례 LPGA투어 대회 출전 경험이 밑거름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그만 연못 신세에서 호수 규모로 커진 KLPGA투어의 독자 생태계 구축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익명을 요구한 여자프로골프 관계자는 "현재 한국여자프로골프 정상급 선수들은 양손에 떡을 쥔 형국"이라면서 "전에 없이 상금이 많아진 KLPGA투어에서 뛰면서 더 많은 상금을 내건 미국, 일본 투어를 틈만 나면 왕래하는 행태를 KLPGA투어 대회를 후원하는 기업에서 어떻게 볼지 이제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외 투어 대회 제한으로 독자 생태계 구축에 팔을 걷어붙인 KLPGA투어의 강수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내년 KLPGA투어의 새로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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