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30년이 흘러도 쇼(Show)는 계속된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그가 무대 한켠 피아노 앞에 앉아 '보헤미안 랩소디'의 첫 소절을 타건하는 순간. 전 세계 15억명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프레디 머큐리. 얼굴엔 그 엄청난 숫자의 눈길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벼운 미소가 스친다.
"Mama, just killed a man"(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노랫말은 살인을 자백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환호한다.(여기서 맨(man)을 사람이 아니라 남성으로 해석해 내 안에 있는 남성성을 죽였다는 뜻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프레디는 타인의 시선이 주는 무게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워진 스타디움의 허공에 독백의 메시지를 날려 보낸다.
그의 처연한 메시지가 현장에 있던 7만2천명을 포함해 15억명에게 고스란히 배분되는 순간,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이라는 공간은 역사가 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5년 7월 13일 저녁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퀸 공연 부분을 재연해 영화 마지막에 20분 넘게 할애했다. 물론 영화 속 7만2천명의 청중 모습은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현대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응축하는 존재다. 자연히 이 영화에서 라이브 에이드 무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계기로 퀸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부차적이다. 피부색이 다른 성 소수자로서 프레디 머큐리가 겪은 차별을 전 세계인 앞에서 고발하고 응징하듯 프레디의 절규는 퀸의 사운드와 함께 폭발했다.
퀸이 그 공간을 점유한 지 18년 만이자 프레디 머큐리가 팬들의 곁을 떠난 지 12년만인 2003년 퀸을 퀸 답게 만든 웸블리 스타디움도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1923년에 지어진 스타디움은 80년 만에 노후화로 철거의 운명을 맞았다. 지금 같은 장소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은 다시 지어져 2007년 재개장한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절규가 메아리쳤던 옛 웸블리 스타디움은 원래 1924∼1925년 대영제국 박람회장이었다. 이후 철거하지 않고 보존되면서 전 세계 스포츠와 라이브 음악 공연의 심장이 됐다.
매년 영국 FA컵 결승이 이곳에서 열렸고, 유러피안컵 결승 5차례, 1948년 하계올림픽, 1966년 월드컵 결승,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 결승, 1992년과 1995년엔 럭비리그월드컵 본선이 치러졌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는 "웸블리야말로 축구의 성지이자, 수도이자 심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 공연장으로도 사용된 건 1972년부터다. 마이클 잭슨은 15차례나 웸블리 무대에 올랐는데 합쳐서 110만장의 티켓이 팔렸다.
롤링 스톤스가 12차례, 마돈나 9차례, 엘튼 존은 7차례 공연했다. 셀린 디온, 티나 터너, 건스 앤 로지스, 데이비드 보위, 핑크 플로이드, 비지스, 이글스, 제네시스, U2, 블루스 스프링스틴, 본 조비, 클리프 리차드 등 대스타들이 무대에 섰다.
웸블리 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도 세계적인 스타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2007년 새로 개장한 웸블리 구장은 최대 수용인원이 9만명인데, 철거된 옛 웸블리 구장은 한때 12만7천명까지 수용했다. 1923년 FA컵 결승 때 12만6천47명이 입장한 것은 아직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새 스타디움에는 모두 2천618개의 화장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장실을 보유한 단일 건축물이다.
80년 역사가 스며있는 옛 스타디움 철거가 결정됐을 때 전 세계 수많은 음악·스포츠팬들로부터 안타까움과 슬픔을 토로하는 항의가 쇄도했다.
당시 영국의 오웬 모르간이라는 한 시민은 BBC 게시판에 "이 나라에서 우리가 목도한 재개발 최대의 비극"이라고 했다.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공연 장면은 마지막을 향해가는 프레디의 운명과 죽음의 절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프레디가 에이즈를 진단받은 해는 1987년이다. 극적인 감정이입을 위해 팩트를 살짝 비틀었는데 효과는 상당했다.
리얼리티가 떨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들 무슨 상관이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 프레디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그는 15억명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음악으로 예고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40∼50대 중년들이 웸블리 콘서트 장면을 보고 눈물을 쏟는다. 그 눈물은 단순한 추억의 감성이 아니다. 가슴 속 어딘가 한켠에 숨겨져 있어 수십년간 볼 수 없었고 뭔지 알 수도 없었던 청춘의 에너지다.
싫은 공부 해야 했고, 먹고 살려고 취직해야 했고, 때 돼서 통과의례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고, 늙어가는 부모까지 부양하며 그냥 그게 삶이거니 하며 살아온 사람들.
근데 그 뭔가가 갑자기 'MAMA~~I don't wanna die~~'가 매개가 돼 뻥 뚫린 가슴 속에서 튀어나와 버린 거다.
'더 이상 이렇게 살순 없어'라고 살짝 되뇌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눈물 나는 중년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 몸 안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거다. 내 몸에 처박아둔 청춘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삶은 언제든 달라질 준비가 돼 있다. 앞으론 에너지를 밖으로 쏟아낼 다짐을 시시각각으로 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중년들에게는 매우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향후 이들이 살아갈 남은 인생을 바꾸고, 중년들의 삶이 바뀌면 사회도 바뀌지 않을까. 영화는 그 변화의 씨를 뿌렸다.
웸블리 스타디움 라이브 에이드를 33년 만에 다시 보고 울컥한 당신. 이번엔 이 노래 가사를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고.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fai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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