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논란' 돈에 우는 서민들…차용사기로 번지는 금전거래

입력 2018-12-13 09:43  

'빚투 논란' 돈에 우는 서민들…차용사기로 번지는 금전거래
문턱 높아진 서민대출에 사금용 이용 증가…돈 안갚으면 형사사건 비화
"서민대출 경로 확대…사인 간 금전거래 의식구조 개선해야"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성서호 기자 = 래퍼 마이크로닷 등 유명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빚투(#빚too·나도 떼였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에게 돈을 빌린 뒤 제때 갚지 않아 법적 분쟁화되는 사건이 늘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은행대출과 금리 인상 등으로 서민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가족이나 지인 등 사적인 신뢰관계를 통해 금전거래를 하는 경우가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금융권과 달리 사적 금전거래 분야의 질적 발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민사사건뿐만 아니라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서민대출 경로를 확대하고, 사인 간 금전거래에 대한 의식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 "가족·친척·지인에 돈 떼여" 일상다반사
서민들 사이에서는 채무 변제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형사사건으로 비화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19일 오전 제주 서귀포경찰서에 불에 탄 흔적과 혈흔이 묻은 차가 발견됐다는 주민 신고가 들어왔다.
차 안에서는 전날 빌려준 돈을 받으려고 건설현장 동료 노동자인 김모(45)씨를 만나러 나간 전모(37)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전씨로부터 빌린 100만 원 중 변제하지 못한 60만 원을 갚는 문제로 다투다가 전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8월 3일에는 A(45)씨가 돈 문제로 싸우다가 서울 서초구 염곡동의 한 도로변에서 30년 지기 친구 B(45)씨를 살해했다.
강남 토박이로 중학생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이들은 사건 당일에도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차까지 마셨다.
이후 A씨가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B씨를 집 앞까지 태우고 갔다가 차에서 꺼낸 돈 얘기가 몸싸움으로 번지면서 참극으로 이어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투자할 만한 사업이 있어 2014년께 B씨에게 수억 원을 빌려주며 함께 투자했다"면서 "흉기로 겁을 줘서 돈을 받아내려고 했을 뿐 살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B씨의 유족은 "돈을 다 갚은 것으로 안다"며 다른 주장을 내놨다. A씨와 B씨는 오랜 친구 사이여서 차용증을 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끊이지 않는 사기범죄…10건 중 1건은 차용 사기
돈을 떼먹는 차용 사기는 해마다 2만여건씩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차용 사기는 2014년 2만3천832건, 2015년 2만5천641건, 2016년 2만5천891건, 2017년 2만3천714건 발생했고, 올해도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2만2천20건이 있었다.
범죄 피해 액수는 100만 원 이하가 30.5%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1천만 원 이하(24.8%), 1억 원 이하(22.0%) 순이었다. 피해 액수가 1억 원을 넘어가는 범죄도 7.6% 수준으로 적지 않았다.
차용 사기는 전체 사기 수법 중 10.7%를 차지한다. 사기 10건 중 1건 이상으로 자주 일어난다는 얘기다.
일선에서 경제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들도 일반인들 사이의 차용 사기가 꾸준히 일어난다고 전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경찰서를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수법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큰 범주에서 볼 때 차용 사기는 전체 사기범죄의 절반 이상은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까다로운 서민 대출…'대출 포화·금리 인상'에 사금융으로
차용 사기가 느는 이유는 서민들이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받는 길이 좁아져 사금융을 통한 대출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민대출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 등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22.9%가 대부업체 대출거절을 경험했고, 15.0%가 대출이 거절된 뒤 사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금융 이용 증가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보다 41조5천억원 증가한 590조7천억원에 달했다. 올해 10월까지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이 22조3천억원인 점을 감안하며 현재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600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서민대출 문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결국 은행대출 수요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6월 말 기준 자영업자의 은행권 대출은 1년 전보다 12.9% 증가한 반면 비은행권 대출은 22.2%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서민대출 환경을 더욱 옥죄고 있다. 금리인상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변동금리로 대출받은 가구의 연평균 이자 부담은 402만5천원에서 496만6천원으로 94만1천원 늘어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미소금융, 햇살론 등 정부의 정책 서민금융상품에 대한 예산을 전액 심각하면서 서민대출 환경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당초 정부는 미소금융, 햇살론,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 등 4대 서민금융상품에 1천억원, 청년대학생 햇살론에 200억원 등 총 1천2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국회 예결위의 전액삭감 결정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 약한 처벌에 차용사기 증가?…처벌론 놓고 반론도
차용 사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법원의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마저도 집행유예로 실형을 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계속적인 금전거래 중간에 사업상 문제가 생겨 이를 고지하지 않고 금전거래를 계속한 경우도 사기죄에 해당하지만, 법원은 이 경우는 약한 기망행위라며 형량을 감경해주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야기하는 금전사기인데도 너무 관대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망행위와 상관없이 악질채무자의 경우는 채무불이행죄를 신설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채무불이행죄는 처벌 만능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도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일각에서는 사인 간의 금전거래를 범죄화하는 것은 국가가 지나치게 사적 계약관계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한 채무 불이행에 불과한 사안에도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 "안전한 대출 경로 확대, 의식구조 개선이 해법"
이처럼 일반인들이 제도권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 채 사인 간 금전거래 등 사금융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부족한 서민 금융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형제나 가족 간 관계를 중요시하는 동양권 국가의 특성상 갑작스럽게 금전을 변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국내 금융시스템은 선진국화해 이런 수요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우리 사회는 선진 사회와 비교했을 때 가계의 소비 구조가 매우 다르다"며 "형제가 어려워서 돕는다든지, 자녀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 때문에 아주 갑자기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럴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사인 간 금융 거래"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금융시스템은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어서 서민 입장에서는 자금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점점 줄어들어 사금융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돈을 주고받을 때 차용증을 쓰지 않는 문화 또한 개인 간 금전거래에서 나오는 여러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 사회는 지인 간에 금전을 거래할 때 계약서에 의존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개인 간 신뢰 하나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채권자 입장에서는 돈을 받으려 할 때 증명을 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런 관행이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적어도 현금 거래를 지양하고 송금 기록을 남겨두는 등의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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