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분간의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냉전적 대립 허물며 '한반도 해빙' 조성
석달의 '롤러코스터 외교전' 극적 성사…4개항 공동성명으로 비핵화 여정 시작
비핵화-상응조치 7개월간 이견 못 좁혀…내년 1∼2월 2차 核담판서 돌파구 주목
[※ 편집자 주 = 연합뉴스는 2018년을 마무리하며 올해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북한과 미국의 핵담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 6건의 국제이슈를 선정해 일괄 송고합니다.]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2018년은 지구촌 마지막 냉전의 땅인 한반도에 '평화의 이정표'를 세우며 세계사적 대전환의 첫 발을 뗀 한 해였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기술적 전쟁상태'로 적대하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마주 앉은 장면은 그 자체로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역사적인 한 컷'이었다. 나아가 6월 12일 싱가포르를 무대로 '세기의 담판'을 벌인 두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은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의 봄이 오길 바라는 세계인의 염원이 담긴 위대한 여정의 출발로 평가됐다.
그러나 북미 정상의 힘찬 첫 걸음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여정은 자갈길처럼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반년을 넘겨 세밑까지 치열한 신경전과 줄다리기를 거듭하고 있는 북미간의 '밀고 당기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 반전, 또 반전…석달간 이어진 '롤러코스터 외교전'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표명과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맞물리며 성사됐다.
지난 3월 8일 백악관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면담한 자리가 그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정 실장 일행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초청장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5월 안에'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회담 날짜가 6월 12일로 확정되고,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를 석방하면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향한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하지만 선(先) 핵폐기를 강조하는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미국이 압박을 강화하자 분위기는 일순간 싸늘해졌다. 급기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공개서한을 통해 전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회담 예정일이 2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좌초 위기에 놓였던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이 의외로 유화적 태도로 반응하면서 재추진 쪽으로 급선회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는 담화를 내놨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환영'한다며 화답하면서 고비를 넘겼다.
마침내 6월1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예방을 받고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 6·12 싱가포르 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 '평화의 이정표'가 된 285분…북미관계·비핵화의 새 장 열어
북미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6월 12일 오전 9시 4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시작돼 4시간 45분 동안 이어졌다. 처음으로 악수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으나 이후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고 마무리될 무렵에는 두 정상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도중 취재진에게 "김 위원장은 매우 유능하다", "(회담은) 아주아주 잘 되고 있다"면서 엄지를 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은 평화로 가는 서막"이라며 "전세계 많은 이들이 우리 만남을 보고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285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수십 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의미있는 첫걸음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4·27 판문점 선언 재확인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포로·미군 실종자 유해 발굴 등 4개 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로써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화염과 분노', '외과수술식 선제타격'과 같은 격한 용어가 등장하며 급박하게 돌아가던 한반도는 '해빙무드'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미래는 지금과는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미는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 등 후속 협상들을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양측은 관심을 모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공동성명에 명시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시한 등을 담은 '시간표'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 7개월째 '밀당', 장기전 예고…내년 1∼2월 '2차 핵담판' 분수령
북미 정상회담 직후 남북미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대로 한미는 6월 말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해병대연합훈련(KMEP·케이맵) 연기를 발표했다. 북한은 그에 화답하는 조치로 7월 27일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했다.
이에 발맞춰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7월 1일 판문점에서 회동,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실무적 협상수순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친서를 주고받는 '친서 정치'로 전체적인 대화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나 해빙 무드 속에서도 미국은 북한의 숨통을 죄는 강도높은 대북제재의 수위를 한 치도 낮추지 않았다.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북한은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미군 유해송환 등에 걸맞은 미국의 '상응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함께 제재를 완화하는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밀당' 속에서 북미 협상은 싱가포르 회담을 개최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미 협상의 실무책임자로 9월 임명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아직 한 번도 북측 카운터파트와 마주 앉지 못했다. 11월 초로 예정됐다가 북측의 요청으로 연기됐던 뉴욕 고위급 회담도 연내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와 관련해 "먼 길이 될 것이다", "시간표(timeframe)는 없다"며 장기전이 될 것을 이미 여러 차례 예고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회의론이 등장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각 급에서 북미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며 외교적 해법을 통한 비핵화에 여전히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북한 비핵화를 '외교적 레거시'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금 '톱다운' 방식으로 김 위원장과 '2차 담판'에 나서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공개적으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내년 1월이나 2월에 열릴 것 같다며 3곳의 장소를 검토 중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여기에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도 내년 봄 예정된 한미연합 실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의 축소 방침을 언급하며 유화적 제스처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그에 앞서 고위급 또는 실무 회담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나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밑 협상을 거쳐 접점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트위터 계정에서 "많은 사람이 북한과의 협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어보는데, 나는 항상 우리는 서두를 게 없다고 대답한다"며 '속도조절론'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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