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일변도 경제 후유증…수익성 따지다 안전 투자 소홀"
"최종 책임은 반드시 본사가…처벌·보상 규정도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김동현 기자 = 국민 생명과 직결된 시설물을 관리하면서도 수익성을 안전관리보다 우선시하는 공공기관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통 항목에 안전 평가가 신설됐지만, 배점이 너무 작거나 단순히 사고 발생 건수로만 채점하기 때문에 공공기관들이 여전히 안전 투자보다는 눈에 띄는 성과 쌓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안전관리에 대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도 근절하고, 반드시 최종 책임은 본사가 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 "성장 일변도 경제의 후유증…평가방식 바뀌어야"
16일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는 공공기관들이 수익성, 효율성을 강조해온 과거 경제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돈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갔다"며 "금전출납부 식으로 모든 걸 계산하다 보니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이 제일'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투자는 실질적인 수익이 안 나다 보니 안전관리에 돈을 쓰면 괜히 손해 보는 것 같고 안전 비용은 소모성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사고가 나면 훨씬 더 큰 비용을 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전에 대한 투자부터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명예교수 역시 "경비 절감은 공공기관 평가와 감사를 잘 받기 위한 최하급 정책"이라며 "안전관리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경제"라고 강조했다.
현행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지난 9일 강릉선 탈선 사고를 일으킨 KTX의 운영 책임이 있는 코레일은 안전 부문 평가 항목인 안전관리율에서 2년 연속 만점(11점)을 받았다.
전년보다 사고 건수만 줄면 점수가 올라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경기 고양 온수관 파열에 책임이 있는 한국지역난방공사[071320] 역시 안전 평가(시설 안전 제고)에서 5점 만점에 4.46점을 받았다. 더군다나 지역난방공사의 안전 평가는 사고 발생률을 보지 않는다.
공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처벌 규정이 훨씬 세고 대신에 안전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등 인센티브를 준다"며 "우리도 이런 식으로 처벌과 보상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과 에너지 공기업에 대해 안전 관련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내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시 안전·환경 요인을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하면 정부 예산 중 안전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은 수준"이라며 "배정된 예산이 적으니 공공기관의 안전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산업화, 과학화,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재난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각해질 것"이라며 "사전에 안전 관련 투자를 충분히 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성장 일변도 경제의 후유증이 이제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셈"이라며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인 만큼 사회 전체가 안전에 대해 전면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 "값싼 외주화·책임 미루기 관행 바로잡을 때"
안전을 외주화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도 고질적 병폐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일례로 지역난방공사의 경우 2002년부터 시작된 안전관리 외주화 등을 2016년부터 본격화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외주화가 전문적인 인력이 아닌 '값싼 인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전문가에 외주하는 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지만, 지금의 외주화는 오로지 비용 절감에 목적이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외주화로 비용을 줄인다는 건 그만큼 비전문가, 산업 안전에 대해 제어할 수 없는 형식화한 업체에 맡긴다는 의미"라며 "하청 근로자는 위험에 고도로 노출되고 저임금 근로 조건에 놓이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전문적인 하청업체에 맡기면 더 잘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하청업체 선정방식을 보면 최저가 낙찰, 즉 저렴한 하청업체를 고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문제 삼았다.
최 대표는 "외주나 하청의 일반화로 중간 구조가 복잡하게 얽히는 바람에 안전체계가 무너지고 근로자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안전을 효율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시설물 안전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앞으로 안전 관련 업무는 본사가 직접 관리하고, 불가피한 경우 외주를 주더라도 전문적인 인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조 명예교수는 "안전관리는 반드시 본사가 정규직을 두고 책임져야 한다"며 "안전관리 요원은 현재의 3배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산업 안전 업무는 직영으로 하든지 아니면 비싼 외주화를 해야 한다"며 "외주를 하더라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회사를 만들거나 외주를 준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본사가 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공통되게 나왔다.
권 교수는 "적어도 안전에서는 원청이 하청의 작업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하청이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만큼 사실상 둘은 생산에 있어 공동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관련 정부 부처가 안전관리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안전관리 업무는 고생만 한다는 인식이 강해 1년이면 담당자가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전문가를 양성하기 어렵다"며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 역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un@yna.co.kr,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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