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귀면와 전성기는 8세기…후대에는 간소화"

입력 2018-12-16 14:22  

"신라 귀면와 전성기는 8세기…후대에는 간소화"
국립경주박물관·기와학회 '신라기와' 학술대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귀신이나 도깨비 혹은 용(龍)을 형상화했다고 알려진 기와인 귀면와(鬼面瓦).
신라 유적 34개에서 나온 귀면와 50종 94점과 출토지가 확인되지 않은 신라 귀면와 17점을 분석한 결과, 귀면와 발전 양상이 6단계로 나뉘고 전성기는 8세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경주박물관과 한국기와학회가 17일 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하는 '신라기와의 편년(編年)' 학술대회에서 윤용희 신라왕경추진단 학예연구사는 신라 귀면와 형식과 변천에 대해 발표한다.
16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윤 연구사는 귀면와 형상을 용으로 보는 견해를 지지하면서 귀면와 특징을 뿔의 개수, 뿔 위쪽에 배치된 상징물인 보주(寶珠), 용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를 표현한 운기문(雲氣文), 기와 바깥 테두리를 장식하는 문양인 연주문(連珠文)으로 분류해 살폈다.
그는 유적 창건 연대와 문헌 등을 고찰해 귀면와 제작 시기를 7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로 추정했다.
이어 성립기(7세기 후반), 전성기(8세기 전반), 전환기(8세기 중∼후반), 발전기(8세기 후반), 침체기(9세기 전∼중반), 쇠퇴기(9세기 후반 이후)로 귀면와 단계를 구분했다.
윤 연구사는 "2단계인 전성기 귀면와는 얼굴이 앞으로 크게 돌출돼 입체감을 높이기 위한 조형이 등장한 점이 특징"이라며 "성덕왕, 효성왕, 경덕왕 등 재위 기간이 긴 왕이 나오고 제도와 문물이 정비되면서 기와 제작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환기에는 새로운 양식의 귀면와를 대량으로 제작해 널리 사용했다"며 "왕경 안에서 건물의 대대적 중수나 창건이 전개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발전기까지를 신라기와 전성기로 본 윤 연구사는 "5단계 침체기에는 숭복사터 귀면와에서 알 수 있듯이 입체감은 여전하나, 뿔과 보주가 사라지고 운기문과 연주문도 매우 간략해지는 간소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9세기 말에는 정치와 문화 중심이 지방으로 넘어간다"며 "이 시기는 귀면와 쇠퇴기로, 평면화와 간소화가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즉 신라가 융성하면서 볼륨감이 있던 귀면와가 왕권 쇠퇴와 함께 단순해졌다는 것이 윤 연구사 주장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경주박물관 소장 신라기와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서부 지역 신라 연화문 수막새, 여말선초 궁궐 막새기와 변화와 배경, 부산 배산성지 출토 기와, 경주 월성 출토 토기 구연(口緣) 암막새, 신라 수막새와 평기와 편년에 관한 발표가 진행된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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