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용 매체인 중앙통신으로만 비난…언급도 수위조절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비핵화 협상의 정체 국면에서 북한이 침묵을 깨고 미국을 향해 저강도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16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명의의 담화를 내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대화 상대인 북한과 신뢰 조성은 커녕 오히려 제재의 수위를 더 높이더니 인권문제로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담화는 미국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인권유린 책임을 물어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등 김정은 정권 핵심실세 3인을 제재한 것을 처음 거론하며 '도발적 망동'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압박 기조는 북한을 비핵화시키려는 길이 '영원히' 막히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여전히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비난의 초점을 폼페이오 장관 등 행정부 고위관료들에 맞추면서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미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고 언급, 트럼프 대통령과 미 고위당국자들을 분리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 간 톱다운 외교의 추동력을 의식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전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북한은 이번 담화의 수위를 외무성이라는 공식적인 정부 기관이 아닌 산하 미국연구소, 그것도 중간 간부인 실장 명의로 발표하며 협상 상대인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전날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이 담화를 17일까지 오전 북한의 전 주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TV 등의 내부 매체를 통해서는 전하지 않아 협상에 대한 여전한 기대를 보여줬다.
북한은 앞서 지난 13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지난달 초 방미 및 북미 고위급회담 무산 이후 처음 대미 입장을 밝히면서도 수위를 조절해 미국과 대화 의지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에 정현이라는 개인 필명 논평 형식으로 비핵화 협상의 소강 국면이 지속하는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미국이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취할 때까지 '인내성 있게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종전보다 거친 언사를 쓰며 미국을 압박했지만, 개인 필명의 논평이라는 낮은 수준의 형식을 취했으며 이 논평 역시 이튿날 노동신문 등 대내용 매체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미국의 '선(先) 비핵화 구체적 조치·검증' 요구에 맞서 제재 완화 같은 상응 조치부터 취하라며 버티기로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비핵화 협상의 판 자체를 깨지 않은 채 미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단계적·동시 행동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미국과 팽팽한 기 싸움을 하고 있지만, 대화의 틀을 깨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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