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니' 히트는 해프닝…'월간 윤종신'은 유통기한 긴 전집"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 행보…"생각 팔아야, 대중과 호흡할 나만의 플랫폼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음원사이트가 오랜 시간 데이터를 제공한 이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큐레이션(Curation·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수 겸 프로듀서 윤종신(49)은 음원사이트가 개인 취향을 반영한 맞춤 서비스로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사재기 의혹이 일던 지난 7월 SNS에 음원사이트의 실시간차트와 '톱 100' 전체재생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지점이 차트 올인에 대한 강박관념을 만들고, 그 폐해가 음원 사재기 논란이란 이유에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만난 그는 "'누가 사재기를 했네'가 아니라, 차트 지상주의 때문에 생긴 현상이란 걸 짚었다"며 음원사이트가 취향 데이터 기반 서비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작 열의만큼,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플랫폼에 대한 방향성이 뚜렷했다. 데뷔 29년 차 가수지만, 평소 뉴미디어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1인 방송 '탈곡기'를 선보이는 유튜브 '월간 윤종신' 채널, 다양한 주제의 글을 포스팅해 문화 담론을 나누는 '윤종신닷컴', 팟캐스트 사이트 팟빵의 '월간 윤종신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 등 여러 채널을 손수 꾸린다.
그는 "창작물이 대중과 호흡하려면 나만의 플랫폼, 미디어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가장 큰 관심은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음악에서 확장해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10년부터 매월 신곡을 내는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을 대표 브랜드로 일궜다. 8년간 꾸준히 결과물을 선보여 지난 8월 100호를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연재만화를 보듯, 일종의 작가주의적 행보였다.
이 프로젝트를 하며 영화, 미술, 소설 등 여러 분야와 컬래버레이션 했고, 특히 영화에 관심을 뒀다. 그가 근래 MC를 맡은 예능도 지난해 JTBC '전체관람가'와 현재 출연 중인 JTBC '방구석 1열' 등 영화 관련 방송.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감독들과 가수 아이유를 주연으로 한 단편 시리즈 영화도 기획 중이다.
"영화란 장르의 창작자가 던지는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됐어요. 근래 제가 많이 꽂혀 있는 게 생각과 이야기거든요. 어린 시절엔 감각을 팔고 나이가 들어선 생각을 팔아야 하니까요."
윤종신의 지금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실시간차트와 '톱 100' 전체재생의 문제점은.
▲ 음원사이트 첫 페이지에 실시간차트가 아니라, '마이 페이지'가 떴으면 좋겠다.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배급업자)의 의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다. 디스트리뷰터의 횡포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내 취향의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얘기다. 일관성 없는 '톱 100' 전체재생 때문에 '차트인'을 해야 하는 강박이 생긴다. 사재기 논란은 차트 올인 제도가 만들어낸 폐해 아닐까. SNS 글도 누가 사재기를 했다가 아니라, 차트 지상주의 때문에 생긴 현상이란 걸 말한 것이다.
-- 그래서 8월 신곡을 낼 때, 자발적으로 음원사이트 첫 페이지 최신 앨범 소개란에 노출하지 않도록 한 것인가.
▲ (순위 상승에 탄력을 받는) 첫 페이지에 실리지 않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제가 유저들과 다이렉트로 만나는 루트가 있어서인 듯하다.
-- 음원사이트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나.
▲ 차트 1등은 지금 핫한 세대가 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질투도 없다. 다만, 음원사이트가 취향 데이터를 제공한 이용자들의 청취에 도움 될 알고리즘은 갖고 있으면 좋겠다. 보통 수년간 특정 사이트를 이용하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오랜 시간 데이터를 바쳤으면 소개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션 입장에서도 제 음악을 좋아할 법한 사람들을 모아줘야 한다.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내 취향에 맞춘 동영상이 뜨고, 페이스북은 기가 막히게 취향에 맞는 광고를 올려주지 않나.
-- 취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요즘 사회 현상 속에서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인가.
▲ 개인이 소중한 시대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전체를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의견은 다양하고 가짓수도 많은데, 어떤 얘기가 나오면 '여론은 이렇다'라고 누군가를 공격한다. 로그인해서 댓글을 쓰는 분들은 익스트림한 측면이 있다. 양쪽 끝의 뾰족한 분들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다 보니 온건하거나 중도적인 분들이 휘둘리게 되는 면도 있다. 여론이 존재하나란 생각도 든다. 세상 소식을 접하는 포털사이트도 각자 관심 있는 뉴스 위주로 취향적 데이터를 제공하는 큐레이션이 돼야 하지 않나 싶다. 컬처에 있어서도 자기만의 세상을 갖게 해주는 게 좋다. 윤종신이란 유저가 이런 취향이니 이런 걸 보고 싶어하겠다를 예상하고 딜리버리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여긴다.
-- 창작자로서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창작물이 대중과 호흡하려면 나만의 플랫폼, 미디어가 있어야 한다. 유튜브에 2011년 개설한 채널 '월간 윤종신'에는 지금껏 낸 곡들이 아카이빙(archiving·자료를 모아둔 파일이나 목록) 되어있다. 그 안에 1인 방송 '탈곡기'도 붙였다. 이 채널은 옛날 개념이면 하나의 방송국처럼 윤종신의 톤앤매너로 정해지는 일종의 문화 백화점이다. '윤종신닷컴'도 저와 팬들이 글을 올리며 담론을 나누는 곳이고, 5년 전부터 팟빵에서 '월간 윤종신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도 하고 있다. 모두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나와 취향이 맞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미 '월간 윤종신' 채널은 그런 점에서 미디어 상태라고 본다. 1인 방송도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꾸준히 제작되고 소비된다면 그런 형태가 될 것이다.
-- '월간 윤종신'은 벤치마킹이 될 만큼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이 프로젝트가 음악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 한 곡으로 팔자를 바꾸려 하기보다, 빅히트곡을 바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꾸준히 음악을 내놓으면 생각보다 대중이 알아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브랜딩이 된 한 어휘가 생겼다는 것이다. '월간 윤종신'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내면, 이 단어가 머릿속에 각인되고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찾아보는 베이스가 된다. 그것은 꾸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된 것이다. 최적화된 나와 오디언스의 만남으로 중간에 낀 미디어 없이 다이렉트로 만나는 건, 꾸준함 밖에 없겠더라. 범 대중에게 제시하기보다 윤종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최대한 다 상대하고 싶다. 100호를 내고서 개인적으로 '쓰담쓰담, 수고했다, 더 가야지' 이런 마음이었다.
-- 아깝게 묻히는 곡도 있지 않나.
▲ '월간 윤종신'은 키워드가 롱타임이다. 유통기한이 길다는 얘기다. 그래서 음원 릴리즈를 할 때 '올인' 하진 않는다. 노래는 세일즈 기간이 영원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2011년에 낸 '나이'란 노래를 매년 12월이 돼 한살 더 먹을 때면 다시 떠올린다. 제가 40대에 쓴 얘기인데, 의외로 10~20대가 반응한다. 지금 던진 노래들은 묻혔다기보다 언제 살아올지 모르는 일종의 전집이다.
-- 미스틱의 음원 프로젝트 '리슨'을 통해 낸 '좋니'가 지난해 가을 음원차트 정상을 휩쓸었다.
▲ '리슨'도 마찬가지다. 음원이 축적된 '리슨'이란 문고판에서 어떤 노래들이 언젠가 소비될 거라 생각한다. '좋니'의 히트는 해프닝으로 봤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이 움직였다고 본다. 많은 교집합을 건드린 것이다. 감각과 트렌드를 초월해 마음속에는 하나의 점 같은 옹졸한 마음이 있지 않나. 그 지점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런 일은 열심히 마구 발표하니 생겨날 수 있는 해프닝이다. 그렇다고 막 던지는 건 아니다. 하하.
-- 음악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엿보이는데.
▲ 내가 많이 꽂혀 있는 게 생각과 이야기다. 어린 시절엔 감각을 팔고 나이가 들어선 생각을 팔아야 한다. 예전엔 영화를 그냥 좋아하다가, 그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영화란 장르의 창작자가 던지는 생각, 장면에 담기는 메타포에 관심이 커졌다. 오락물을 뛰어넘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생각과 인문학적 견해에 감탄한다.
-- 감독 4명이 아이유를 주연으로 단편영화 4편을 연출하는 '오리지널 시리즈'는 '전체관람가' 출연이 계기가 됐나.
▲ 이미 2년 전 '월간 윤종신'의 1년을 단편영화와 함께 가보려 했다. 감독님들이 보통 하고 싶은 얘기를 흥행 부담 없는 단편에 개성 있게 담아내더라. 그걸 한창 기획할 때 플랫폼의 시대가 왔다. 플랫폼에 들어가 보니 15~20분짜리 영상들이 있었다. 여러 감독님을 만나 편당 3천만원씩 총 3억원을 들여 10편을 찍자고 제안하자 모두 오케이 했다. 프로덕션이 쉽지 않아 계획을 좀 '딜레이' 했을 때, 감독님들 사이에 그 얘기가 퍼졌는지 '전체관람가' 제안이 들어왔다. 아이디어를 빼앗겼다기보다, 방송국 인프라로 MC를 보면서 미리 경험해봤다. 그러면서 임필성, 이경미 감독님에게 예산을 더해 재미있는 시리즈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몇몇 배우를 고민하던 중 아이유가 떠올랐고, 감독님들도 참신하고 재미있겠다고 했다. 플랫폼은 넷플릭스, 유튜브 등 가능성을 열어놨고 4편을 묶어 극장 개봉도 고민 중이다. 페르소나 시리즈로, 계속 이런 콘텐츠를 할 생각이다.
-- 지난 8월 작사 뒷얘기를 담은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란 책도 냈고, 내년 2월까지 동명 투어도 진행 중인데.
▲ 책은 1년 넘게 준비했다. 작가들처럼 꾸준히 앉아서 탈고하진 못했고, 계속 짧은 메모를 출판사 편집팀에 넘겼다. 그러면서 수정하고 감수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 노래를 들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다음에 책을 한권 더 낼까 생각 중이다.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는 계절 변화 속에서 제가 느낀 감정의 변화란 의미다. 우리 나이로 50세이니, 반복되는 네 개의 패턴을 50번 경험했더라. 어떤 계절이 오면 누가 생각나듯이 작년 겨울, 올해 겨울 기분이 다르지 않나. 매월 낸 제 노래들에는 시간, 계절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가 담겼다.
-- 지난 7월 용산구 한남동에 '월간 식당'도 열었다.
▲ 이곳도 범 대중이 좋아할 곳은 아니다. 하하. 서양식 요리 주점인데, 이탈리아와 일본 음식이 섞였다. 동서가 이탈리아에서 꽤 오래 있던 안경석 셰프인데, 나름 개성 있는 음식을 한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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