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PC방 살인사건' 범행 잔혹…심신미약 주장에 여론 들끓어
"감경은 판사재량으로" 형법 개정…"가족들, 피해고통 잊으려 사투"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
지난 10월 16일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PC방 손님이던 김성수가 스무살 아르바이트생 A씨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냈다는 소식에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청원의 서명자 수는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해 119만2천49명에 달했다. 역대 최대 기록이다.
거센 여론에 정치권은 법까지 뜯어고쳤다. 심신미약에 따른 형량 감경을 '의무'에서 '임의'로 바꾼 형법 개정안. 이른바 '김성수법'이다.
◇ 끔찍했던 범행…동생 살인공범 논란 거듭
김성수(29)는 10월 14일 오전 8시께 강서구의 한 PC방 입구에서 피해자 A씨를 때리고 넘어뜨린 뒤 흉기로 80여 차례나 찔렀다.
자리를 치우는 문제로 피해자와 말다툼을 했는데 여기에 화가 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건 약 3시간 만에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 나중에 검찰은 김성수의 흉기에 피해자 얼굴과 팔 등의 동맥이 절단됐다고 전했다.
당시 응급실에서 피해자를 담당한 의사는 "극렬한 원한으로 인한 상처처럼 보였다"고 회고했다.
모델을 꿈꾸던 무고한 청년이 무참히 살해된 것만도 충격적이었으나, 사건에 앞서 피해자 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참극을 막지 못했다는 점도 분노를 키웠다.
피해자의 아버지도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처음 출동했을 때) 경찰들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면 살인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성수는 현행범 체포됐지만, 동생(27)이 입건되지 않고 풀려났다는 사실에도 논란은 확산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김성수의 동생이 망을 봤다거나 미리 범행을 공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수사 결과 김성수의 동생이 범행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에는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결론 내리고 김성수에게 살인 혐의를, 동생에게 공동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김성수의 '우울증 진단서' 제출은 이번 사건의 파급력을 키운 핵심 요인이었다.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이 심신미약을 인정받고서 형량이 15년에서 12년으로 줄었듯, 김성수도 우울증 병력을 앞세워 심신미약 감경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여론이 들끓었다.
다만 우울증 진단서는 경찰이 먼저 요구해 김성수의 가족이 제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당시 범행이 유난히 잔혹했던 점 등을 보고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며 "관련 진단서 등 근거를 제출해달라고 피의자 가족에게 요구했고 그래서 우울증 진단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성수를 공주치료감호소로 보내 정신 감정을 받게 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성수 측이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려고 하면서 사건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전략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 포석이었다. 결국 공주치료감호소는 김성수가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 "몸이 힘들어야 잊지…" 남겨진 가족의 사투
피해자 부모는 서울에서 운영 중인 가게 문을 닫지 않고 있다.
피해자 변호를 맡아온 법무법인 이헌의 김호인 변호사는 "어떻게든 일상생활을 하지 않으면 아들 생각이 떠올라 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다고 하신다"며 "몸이 힘들면 기억이 지워질까 하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영업을 계속하신다고 한다"고 유족의 근황을 전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피해자 유족들은 이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방송이나 뉴스 기사도 되도록 접하지 않는다. 언론과의 접촉은 극도로 꺼린다. 곧 시작될 김성수의 재판에도 피해자 부모는 '너무 힘들어서'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김성수의 공판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의 부친은 담당 검사를 만났을 때 '우리 애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분명히 당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담대한 분이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어해서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변호인은 김성수의 동생이 살인 공범으로 기소되지 않은 점에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의 형은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았을 동생의 살해 장면 CCTV를 수백 번이나 돌려 보며 샅샅이 분석했다"며 "변호사로서 김성수의 동생을 살인죄로 기소시키지 못해 자괴감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영상을 재차 분석해 그렇게 결론지었다고 하지만 유족과 망인의 한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 심신미약 이제 '판사 재량'에…'김성수법' 국회 통과
여야는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250명 중 248명이 개정안에 찬성했다. 심신미약 감경과 관련한 형법 10조2항의 문구는 '감경한다'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면 법정에서 해당 범죄에 대해 형을 정할 때 감경하는 것이 의무였으나, 이번 법 개정으로 심신미약 피의자에 대해 판사가 재량에 따라 형 감경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김 변호사는 "정말 중요한 입법"이라며 "재판부에서도 심신미약을 적용할 때 조금 더 유의 깊게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또 "최근 3년 동안 대법원에 올라간 살인사건이 2천500여건인데 대부분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했다고 한다"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만 실제로 심신미약을 인정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는 법 개정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더욱 더 법정에서 너도나도 심신미약을 주장하게 될 것"이라며 "기존에는 심신미약을 주장해도 실제 이를 인정 받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앞으로는 심신미약을 인정받아도 형이 감경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심신미약인 피고인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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