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도지원' 카드로 北에 손짓…북미협상 정체 풀릴까

입력 2018-12-19 19:41  

美 '인도지원' 카드로 北에 손짓…북미협상 정체 풀릴까
'방북금지 완화'와 한세트…北 원하는 수준의 제재완화엔 못미쳐
"김정은 신년사에 긍정 영향 의도도"…대화 모멘텀 유지에 도움될듯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미국이 대북 인도지원을 위한 미국 국민의 북한 여행을 허용할 것임을 시사하면서 정체 국면이 길어지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관심이다.
물론 경제 재건을 위한 본격적인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북한이 보기엔 미흡할 수 있지만 '비핵화 전까진 대북제재 완화는 없다'던 미국이 인적 교류와 관련된 영역에 한해 제재의 완화 또는 조정을 예고한 것이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19일 방한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 인도지원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미국 국민의 북한 여행 금지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방한 시 거의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아 왔던 비건 대표가 입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정리된 자국 정부 입장 문건을 취재진에게 낭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발표는 미국이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미국은 작년 8월부터 미 국민의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대북 독자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당시 조치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사망한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 정부는 인도지원 목적과 관련해 여행금지 조치를 재검토하는 배경으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이 신속하게 풀려난 일을 거론했다.
비건 대표는 "두 달 전 미국 국민이 북한에 불법 입국해 억류됐는데 북한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신속하고도 신중하게 추방을 진행했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 여행의 안전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달 불법 입국 혐의로 억류했던 미국 국민 1명을 추방했다고 밝힌 사례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6일 "10월 16일 미국 공민 브루스 바이론 로랜스가 조중(북중) 국경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불법입국하여 해당 기관에 억류되었다"면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에 불법 입국 혐의로 억류된 미국인이 한 달 만에 풀려난 것은 상당히 빠른 것으로, 과거엔 수년간 억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자국민에 대한 북한의 '인도주의적 처사'에 호응하는 형태로, 인도지원 재개를 고리 삼아, 대화에 나오라는 신호를 북에 던진 셈이다.
인도적 지원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도 금지하지 않지만 미국은 그동안 대북 독자제재의 하나인 '미국인 방북 금지'를 활용해 인도적 지원에도 사실상 제약을 가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미국의 대북 '우호 제스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북미 대화의 교착 상황을 타개할때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돌파구' 역할을 한 것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머지 않아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추진키로 한 800만 달러 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미 측이 지지 입장을 밝힐지에도 관심이 쏠리게 됐다.
아울러 비건 대표가 큰 틀에서 대북 제재의 완화로 연결될 수 있는 자국민 여행 금지의 재검토를 천명한 것은 북한이 근래 미국의 '상응조치' 차원에서 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이런 호의적인 제스처에 북한이 즉각 호응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고위급회담 등 미국의 대화 제의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를 거론하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언급했는데 미국이 제재완화 등 만족할만한 '보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게 북한의 불만으로 보인다.
대북 인도지원 재개와 이를 위한 미국인 방북 허용도 제재완화의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보기엔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자칫 대화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발표된 미국의 이번 조치는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는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도 미국과의 실무협의에는 응하지 않고 있지만 내년에도 협상기조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새로운 역사의 흐름이 역전되는 일은 없다"면서 "조선(북한)의 최고 영도자께서 '완전한 비핵화'를 이미 결단하셨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인도지원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인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영향을 주고 싶은 의도도 있는 것 같다"면서 "북한과의 대화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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