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내년 적자 규모 GDP 2.4%→2.04%로 낮춰
伊 정치권 "기본소득·연금연령 하향 등 핵심 공약은 불변"
(브뤼셀·로마=연합뉴스) 김병수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19일 이탈리아의 내년도 예산 수정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몇 달 동안 EU 집행위와 이탈리아 정부가 내년도 이탈리아의 과도한 적자 예산안 편성을 놓고 벌여온 줄다리기가 일단락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과도한 적자 예산안에 대한 EU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내년도 적자 규모를 GDP(국내총생산)의 2.4%에서 2.04%로 낮추기로 EU 집행위와 잠정 합의했다.
대신 EU는 내년도 예산 편성과 관련해 이탈리아 정부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EU는 회원국들이 예산을 편성할 때 재정적자 상한선을 GDP의 3%로 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이미 국가부채가 GDP의 131%로 그리스에 이어 역내 2위에 달해 2.4%의 재정적자도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동안 이탈리아 정부가 EU의 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고 내년도 재정적자 규모 GDP 2.4%를 고수하자, EU는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제재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집행위 부위원장은 이날 "오늘 합의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정부에 제재를 부과하는) '과도한 재정적자 시정절차(EDP)'는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EDP를 발동하게 되면 EU 집행위는 이탈리아 재정 집행실태를 면밀히 모니터하게 되고, 이후에도 EU의 재정규칙을 계속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로 GDP의 0.2%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EU 집행위 측은 "우리는 충돌보다 대화를 선택했다"면서 "이번 결정은 EU의 규칙이 민주적인 선택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EU는 당초 이탈리아가 제시한 GDP의 2.04%라는 재정적자 폭도 너무 높다고 지적하며, 추가 삭감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노란 조끼' 시위로 궁지에 몰린 프랑스 정부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놓은 여론 진정책으로 프랑스의 내년 재정적자도 EU의 상한선을 훌쩍 초과하는 GDP의 3.4%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자 이탈리아를 더는 압박할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탈리아는 내년 예산안에 대해 EU와 합의에 도달해 제재를 피하게 된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극우 정당 '동맹'을 이끌며 포퓰리즘 정부의 최고 실세로 떠오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EU와의 합의가 도출된 것은 이탈리아 시민의 안녕을 위해 상식이 승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노란 조끼' 시위의 후폭풍으로 프랑스의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크게 불어날 것으로 전망되자, EU를 향해 "적자와 서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이날 또한 당초 계획한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약속한 복지와 관련한 핵심 공약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살비니는 당초 재정적자 하향을 압박하는 EU에 반발해 "(예산안의) 소수점 한자리도 고칠 수 없다"며 완강한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그러나, EU와의 갈등이 계속될 경우 금융 시장 불안과 포퓰리즘 연정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 아래 수정안을 수용하는 쪽을 택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도 이날 EU와의 합의가 공식 발표된 뒤 이를 상원에 보고하며 "재정적자를 GDP의 2.4%에서 2.04%로 줄이기로 했으나, 당초 예산안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콘테 총리는 저소득층을 겨냥한 월 780 유로의 기본소득 제공, 노동을 한 햇수와 나이가 '100'에 도달할 경우 연금을 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부 직종 종사자들의 연금 수령 연령을 하향하는 소위 '쿼타 100' 연금 개혁안 등은 당초 계획대로 실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경제 전망의 악화로 이탈리아의 내년 GDP 성장 전망을 당초 1.5%에서 1.0%로 낮추는 것에도 EU와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탈리아는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EU가 재정적자 규모를 낮추는 데 필요한 재원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자, 공기업 민영화와 부가가치세 인상, 기본소득 개시 시점 조정 등의 방식으로 40억 유로를 추가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안의 타결로 그동안 시장을 짓눌렀던 불확실성이 걷히며 이날 이탈리아 금융시장은 강세를 보였다.
국채 10년물 금리는 3개월 만의 최저치인 2.76%로 하락했고, 밀라노 증시는 장중 2% 가까이 급등했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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