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조작·가공인물 등장 등 14건 확인…71년 역사에 '먹칠'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독일의 '타임'지(誌)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71년 역사의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이 한 프리랜서 기자가 소설 같은 기사를 써온 것으로 드러나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BBC 등이 20일 보도했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기자는 이달 초 독일에서 '올해의 기자상'을 받는 등 민완 기자로 활약해 슈피겔은 한층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2011년부터 7년간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면서 슈피겔 잡지와 인터넷판에 60여 건의 기사를 쓴 클라스 렐로티우스(33)는 특종성 탐사보도로 유명한 기자였다.
2014년 CNN이 선정하는 '올해의 언론인'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올해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읽기 쉽고, 시적이며, 사회이슈를 잘 다뤘다'는 극찬을 끌어낸 시리아 소년 관련 기사로 독일 기자상의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슈피겔 자체 조사 결과 그가 썼던 기사 가운데 최소한 14건은 지어낸 코멘트를 담거나 기사 속의 등장인물이 가공(架空)의 존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기사가 아닌 소설을 써서 슈피겔에 주고, 슈피겔은 이를 잡지와 인터넷판에 그대로 올린 것이다.
슈피겔 외에 일간 타츠, 디벨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 일요판 등 독일의 다른 유력지에도 투고해온 렐로티우스 기자의 사기 행각은 그의 기사 내용에 평소 의심을 품은 한 동료 기자가 지난 11월 게재됐던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관련 기사 내용을 파고들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슈피겔의 동료인 후안 모레노 기자는 렐로티우스 기자가 많이 인용한 두 명의 취재원을 찾아내 기사에 인용된 것과 같은 말을 했는지 확인했다.
그러자 취재원으로 등장한 두 사람은 렐로티우스 기자를 만난 적도 없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잘못한 게 없다고 부인하면서 자신의 비위를 파헤치려는 모레노 기자를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었던 렐로티우스 기자는 선임 에디터의 추궁에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렐로티우스 기자는 문제의 기사에서 '멕시코인 출입금지'라고 적힌 손팻말을 봤다고 기술한 내용도 꾸며낸 것이라고 실토했다.
슈피겔은 이 기사 외에 렐로티우스 기자가 엉터리로 쓴 대표적인 사례로 미군 관타나모 기지 수용소에 갇힌 예멘인과 미식축구 스타 콜린 카에페르닉을 다룬 기사를 거론했다.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슈피겔은 19일 꽤 긴 사고(社告) 기사를 통해 렐로티우스 기자의 사기 행각 전말을 전하면서 "우리도 충격을 받았다. (1947년 창간된) 슈피겔 70년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이라면서 75만 잡지 독자들과 650만 온라인 독자, 그리고 엉터리로 인용된 취재원 등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렐로티우스 기자는 "새로운 특종 욕심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벌인 일"이라며 "(좋은 기사를 써서) 명성이 높아질수록 실패하지 않겠다는 압박감이 한층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슈피겔은 렐로티우스 기자를 해고하고 그가 쓴 다른 기사에도 허위 사실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parks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