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웅 군 마지막 순간까지 장기 기증 감동 전하고 하늘나라로
부친 "꺼져가는 생명으로 7명 살려 감사, 더욱 따뜻한 사회 되길"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딸 아이가 며칠만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더 늦기 전에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선웅이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열아홉 살 막내아들을 보내는 게 결코 쉬울 리 없었다.
그러나 김선웅 군의 아버지 김형보(55)씨는 아들이 뇌사판정을 받자 고심 끝에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김 군은 그렇게 마지막 순간 7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를 돕다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지 나흘만이었다.
김 군은 지난 10월 3일 새벽 3시 5분께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제주시 도남동 정부종합청사 앞 횡단도로에서 힘들게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를 돕다가 과속 차량에 치였다.
사고 당시 뒤에서 수레를 밀던 할머니는 차와 충돌하지 않아 목숨을 구했지만 앞에서 수레를 끌던 김 군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치료를 받다가 안타깝게도 뇌사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당시 김 군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데에는 김 군이 아홉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김 군의 어머니도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사상태로 3년간 투병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김형보 씨는 "아내가 깨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결국 눈만 뜬 채 병상에 누워있다가 생을 마쳤다"며 "아내가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다른 생명을 살렸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내의 죽음은 김씨가 딸과 함께 장기기증 서약을 한 계기가 됐고, 김 군도 이번 장기기증으로 그 뜻을 이어받게 됐다.
그리고 김 군이 떠난 지 2개월여. 김 씨는 아직도 아들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아들 덕에 조금 더 따뜻해진 세상에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김 군이 장기기증을 했다고 알려진 주에만 평소보다 2배가량 많은 장기기증 신청이 들어왔다.
장기를 기증받은 수혜자들은 익명으로나마 '은혜를 꼭 갚겠다'며 언론매체를 통해 고마움을 전해 왔다.
김 씨는 "장기기증으로 아들이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살아서도, 죽기 직전까지도 선한 삶을 살다간 아들이 장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군의 선행이 알려지자 LG복지재단은 김 군에게 LG의인상을 수여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서귀포시 라파의 집 정원에 김 군의 선행을 기리는 생명의 나무를 심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꺼져가는 생명으로 7명을 살렸으니 감사할 따름"이라며 "아들 일을 계기로 주변에 선한 일이 많이 일어나 사회가 한층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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