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형 참사를 겪을 때마다 정부는 구호처럼 반복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목표는 국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해 국민안전을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가?
화마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한 충북 제천의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1년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끔찍한 사고를 체험한 제천시민들은 정신적 고통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사고는 순간이지만 남겨진 고통은 길고 질기다. 제천참사는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 불법 건축과 소방시설 불량 등 안전 취약 요인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불이 났을 당시 분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이었지만 진입로의 불법 주·정차 차량 탓에 인명구조용 고가사다리차는 500m를 우회해야 했다. 비상구는 창고로 쓰여 대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안전의식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판박이 사고'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 제천참사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올해 1월 말 경남 밀양에 있는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불이 나 39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부상했다. 제천 때보다 더 큰 인명 피해를 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데다 방화문이 열려 있어 유독가스가 빠르게 번져나가 이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그대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 종로의 3층짜리 고시원에서 지난달에 발생한 화재사고는 후진국형이다. 스프링클러 등 방화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강릉 펜션 참사는 즐거워야 할 세밑에 온 국민을 우울증에 빠뜨렸다. 고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내고 '우정 여행'에 나섰던 고3생들이 가스에 중독돼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었다. 객실 보일러의 연소 가스 배기관 연결 부위가 어긋나 그 틈으로 유출된 일산화탄소가 사고원인으로 지목됐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가스 누출경보기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이제 안전불감증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게 됐다.
안전이 헛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재난과 사고의 예방과 즉각적인 대응 시스템을 갖췄는지 모든 부문에서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형식적인 점검과 땜질식 처방으로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시설기준과 점검체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관계 당국의 점검 결과에 따르면 제천이나 밀양 참사가 주는 교훈을 잊은 듯 소방도로의 불법 주·정차는 여전히 넘쳐난다. 다중이용시설의 소방·건축·전기·가스 시설은 상당수가 불량인데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 시민과 정부·정치권이 합심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참사를 예방하고 사고가 나도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사고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