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긴장완화·군축은…차관제공에 국경서 무인자동화기 철수

입력 2018-12-25 06:00  

동서독 긴장완화·군축은…차관제공에 국경서 무인자동화기 철수
교류·협력 확대 속 동독, 탈출자 경계 강화도
서독 내 군축여론 커지자 서독 정부, 경제협력 내세워 소련 설득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올해 급격한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논의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독일 통일 전 동서독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축 과정이 참고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은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에서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
이후 남북한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GP 10개씩 완전파괴했고, 지난 12일에는 양측이 파괴된 GP를 상호 검증했다. 앞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와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지뢰 제거 등도 추진했다.
동서독의 경우 통일을 이루기 이전 오랜 기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진행됐다.
대규모 군축은 진행되지 않았으나, 인적·물적 교류·협력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베를린 장벽 구축 등 동서독 간 긴장 고조
연합뉴스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협력을 받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동서독은 분단 이후 사실상 자유로운 인적 왕래가 가능했으나 냉전이 격화된 1952년 5월께 동독이 양측 간 군사분계선 통행을 제한했다.
그러면서 경계병력이 국경탈출자를 상대로 발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어 1961년 8월 동독 측이 베를린 장벽을 세워 동서 베를린 주민들의 왕래가 막혔다. 동서 베를린 외의 경계선에도 각종 차단시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냉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1970년 서독과 소련은 모스크바조약을 체결하고 상호 무력사용 및 위협행위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동서독은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해 무력행위를 금지하고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협력을 하기로 했다.
특히 양측은 기본조약에서 유럽의 안보에 기여하고 군비 축소 노력을 지지하기로 했다.
기본조약의 체결에 따른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 확대는 실질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완화했다.
그러나 양측은 다른 분야와 달리 군사 분야에서는 후속협정을 체결하지 않아 군축은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또, 동독 정부는 교류 확대에 따른 체제 불안을 막기 위해 국경에 무인 자동발사기를 설치하고, 지뢰 매설을 확대하며 교류·협력 증진에 역행하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동서독은 핵미사일 배치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소련이 1970년대 중반 중거리탄도미사일인 SS-20을 동독 등에 배치한 데 대응해 미국은 1983년 서독에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군사적 관계가 경색됐다.


◇ 국제협약을 통해 긴장완화…실효성 문제도
1975년 8월에는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등 35개국이 헬싱키 협약을 체결해 2만5천명 이상이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사전통지하기로 해 동서독의 군사적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 협약은 검증조항을 갖추지 못하면서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국제사회는 헬싱키 협약에 참가한 35개국이 다시 1986년 스톡홀름조약을 체결했다.
병력 1만3000명 이상, 전차 300대 이상, 항공기 200대 이상이 출격하는 훈련의 경우 최소 42일 전 통보하도록 하고 매년 다음 해 훈련 계획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헬싱키 협약과 달리 스톡홀름 조약은 가입국의 조약 준수 여부가 의심될 경우 현장 검증을 하도록 했다.

◇ 정당 간 군축 교류
핵미사일 배치 문제 등으로 동서독 정부가 군축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측 정당이 군사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하는 데 합의했다.
1980년대 중반 서독 사회민주당과 동독 공산당이 중부유럽에서 비핵화지대 건설 등에 합의한 것이다.
두 정당은 화학무기도 감축하기로 했다.
물론, 정부 간 합의가 아니어서 구속력이 없는 선언에 불과했지만, 군사 분야에서 동서독 간 협력할 수 있는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군비축소 여론 커져…미·소 협상 통해 핵미사일 철수
핵미사일 배치 문제로 위기감이 팽배해지자 서독 내에서는 군비 증강에 대한 반대 여론과 평화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정치권이 압박을 받아 군사 분야에서도 동서독 간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외교적으로도 서독 정부는 경제협력을 무기로 소련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과 소련은 1983년 3월 군축협상을 재개했다. 결국 양측은 1987년 12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협정을 체결하고 유럽 내 지상 발사 중거리 핵미사일을 완전히 철거하기로 합의했다.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적 지원은 군사적 긴장 완화에 직접 기여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동독 경제가 위기를 맞았을 때 서독 정부는 1983년 바이에른주를 통해 동독에 차관을 제공했다.
동독은 이에 대한 대가성으로 서독과의 경계선에 설치된 무인 자동발사기를 철수했다.
동서독의 군축은 양측 간의 협상도 중요했지만, 유럽에서 서구권과 동구권이 가장 첨예하게 군사적 대치를 하던 지역이라는 점에서 냉전구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게 특징이었다.
그만큼 동서독 간 자율성이 크지 않아 군축협상이 원활하지 않았다. 서독엔 미군, 동독엔 소련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기도 했다. 동독 측이 체제경쟁에서 뒤처진 데 대해 위기감을 가진 것도 걸림돌이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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