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화학 등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필요 기업 포함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김지헌 기자 = 정부가 24일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을 일부 사업장에만 인정한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상당수는 주 52시간제 유예 기간이 끝나게 됐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한 직후 브리핑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사정과 최근 시작된 탄력근로제 개선 논의 상황 등을 고려해 일정 범위의 기업에 대해서는 계도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이번 계도기간은 지난번과 같은 전면적인 계도기간 설정이 아니며 대상과 사유를 한정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장근로를 포함한 노동시간 한도를 주 52시간으로 낮추는 노동시간 단축은 지난 7월 300인 이상 사업장 약 3천500곳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준비가 덜 됐다는 경영계 요구를 받아들여 올해 말까지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둬 주 52시간을 위반해도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법 시행을 유예한 것이다.
경영계는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연장할 것을 요구했으나 연내 법 개정이 무산되자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이 이뤄질 때까지 계도기간이라도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경영계 요구를 받아들여 계도기간을 연장하되 그 대상을 한정하기로 한 것이다. 상당수가 대기업인 노동시간 단축 대상 300인 이상 사업장이 대체로 주 52시간제를 잘 지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도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주 52시간제가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조사결과,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인 기업은 지난 3월만 해도 58.9%에 머물렀으나 10월 말에는 87.7%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시간 단축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이 12.3%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 추가 연장도 대체로 이들 사업장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이날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 연장 대상 사업장으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이 필요한 사업장을 꼽았다.
철강과 화학 등 업종에 속하는 사업장의 경우 대정비·보수 등에 통상 3개월 이상의 집중근로가 필요해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난방기 제조업 등 계절적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사업장도 성수기에는 3∼4개월의 집중근로가 필요해 현행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포함한 개선 방안은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가 지난 20일 논의에 착수했다.
노동시간 개선위는 내년 1월까지 논의 결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2월 법 개정을 완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도입을 위한 노사 협의를 할 계획이거나 아직 진행 중인 사업장에 대해서도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을 연장해줄 방침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아직 노동시간 단축을 제대로 못 해 인력 충원, 노동시간 개편 컨설팅, 생산설비 도입 등을 추진 중인 사업장도 계도기간 연장 대상에 포함됐다.
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문제로 계도기간 연장이 필요한 사업장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관련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하고 노동시간 단축이 부진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내년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은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정 기간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시간 위반 고소·고발이 접수된 경우에도 사업주의 노동시간 단축 노력을 최대한 참작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한다.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 연장은 주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법 개정이 늦춰진 데 따른 것이지만, 두 차례나 계도기간을 연장한 것은 노동관계법 집행의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시간 단축은 내년 7월에는 금융, 방송, 우편업 등 노동시간 단축 특례 업종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에서 시행에 들어가고 2020년 1월에는 50∼300인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이 사업장들도 노동시간 단축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계도기간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현재 노동시간 단축 대상인 300인 이상 사업장만 해도 상당수가 대기업으로, 주 52시간제 시행에 큰 문제가 없으나 중소기업인 50∼300인 사업장은 노동시간 단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노동시간 단축 관련 계도기간을 6개월에서 더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며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 정부의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ljglo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