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재훈 논설위원 = 분단 이후 올 한해 만큼 한반도 정세가 격동의 시절을 보낸 때는 없었다. 그러나 돌고 돌아 여전히 정세는 안개 속이다. 남북관계는 3차례의 정상회담을 열 만큼 진전됐지만, 북미 관계는 6개월 전의 예상과는 달리 지지부진하다. 금방이라도 핵무기와 물질이 폐기되고 북한과 미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한반도에 과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봄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지만, 가을이 지나고 한겨울이 오도록 아직 비핵화는 본격 협상 궤도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날은 풀렸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 불예측성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훗날 뒤돌아봤을 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전환적 시점으로 기록될지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달렸다. 올해보다 더 중요한 2019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이나 미국 모두 내년은 중요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이행이 끝나는 해가 2020년이다. 실질적인 경제 성과를 그전까지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간적 압박감이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2020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연임에 도전할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말이 아닌 실질적 성과를 그때까지 두루 보여줘야 한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 요소인 새해 북미 관계의 시나리오는 대략 몇 가지 범주에서 상정해 볼 수 있다. 우선 비핵화가 급진전하며 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 반대로 협상 결렬로 2017년과 같은 대결 국면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현재와 같은 교착상황이 유지될 수도 있고, 혹은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못하는 어중간한 타협 속에서 북미가 협상을 깨지도, 급진전시키지도 못하는 가운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며칠 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 도입 4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거창하게 베이징에서 벌였다. 1978년 12월 덩샤오핑과 개혁 지지 세력이 개혁개방 정책을 결정한 뒤 지난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55배 성장했고, 8억명이 넘는 사람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중국식 개혁개방이나 베트남식 '도이머이'(개혁개방)가 북한에서 불가능하지 않다.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몇 차례의 경제 관련 조치들이 있었고, 경제개발구 20개 이상이 설치돼 운영 중이다. 북한은 올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핵과 경제건설의 이른바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선언했다. 경제건설이 당면 목표라면 더 주저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김정은 신년사'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매년 1월 1일 아침 내놓는 신년사는 한 해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이자 대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외교 이벤트다. 소위 그해의 국정 운영 방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면 나올 김정은 신년사가 북미협상에 동력을 다시 불어넣고 새해 한반도 평화를 한층 진전시킬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언급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최근 관영 매체 논평에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면서 "일방적인 북 비핵화라는 망상을 버리면 길이 보이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는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며칠 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내년이 중요하다면서 "내년 중에서도 1·4분기, 2∼3월까지 비핵화가 본격 궤도에 오르느냐가 2019년 전체, 2020년까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향을 좌우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도 나온다. '김정은 신년사'에서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진전을 후퇴시키는, '역진 메시지'가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실패를 되풀이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모두가 패자로 기억될 뿐일 것이다. 시간은 미국의 편도, 북한의 편도 아니다. 운명의 1년, 역사의 새로운 물줄기를 남·북·미가 적극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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