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세계관 넓히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PMC:더 벙커'는 한국영화로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POV캠(1인칭 시점)으로 촬영해 1인칭 슈팅 게임 같은 비주얼을 구현한다. 대부분 영어 대사에 외국인 배우가 대거 등장해 주연인 하정우·이선균을 빼면 영화의 국적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시사회 이후엔 "긴장감 넘친다"는 긍정적 평가와 "정신없다"라는 부정적 반응이 엇갈렸다. 그러나 개봉일인 26일에는 '아쿠아맨' '범블비' 등을 제치고 실시간 예매율 1위로 출발했다.
주인공은 민간군사기업(PMC)에서 일하는 캡틴 에이헵(하정우). CIA로부터 거액의 비밀작전을 의뢰받은 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DMZ 지하 30m 벙커로 잠입했다가 함정에 빠지고 만다.
개봉 전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김병우(38) 감독은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면도 있지만, 단순히 수출을 지향했다기보다 한국영화 세계관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5년 전 방송국 스튜디오를 무대로 앵커와 테러범 간 대치를 그린 '더 테러 라이브'(2013)로 558만명을 불러모았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 고립된 공간을 또 배경으로 택했다.
▲ (하)정우 형과 어떤 영화를 해볼까 대화하다가 벙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 벙커를 정치적, 군사적 요충지와 연결짓다 보니 DMZ 지하로 설정한 것이다. 과거 북한이 남침용 땅굴을 파지 않았나. 여기에 1970년대에 이 땅굴을 비공식적인 남북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 용병들을 내세운 이유는.
▲ 주인공의 국적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가 아니어서 남한의 대표 인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 또 용병일 경우 인물의 내적 갈등이 잘 표현될 것 같았다. 용병은 민간군사기업(PMC)에 소속돼있다. 자료 조사를 해보니 PMC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창출이다. 그러다 보니 비용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급품도 열악하고, 작전 중 사망위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죽어도 전사자가 아니라 산재처리가 된다고 하더라. 2003년 미국의 대 이라크전 때도 용병 사망자 수가 미군 사망자 수보다 더 많았다.
-- 용병역을 맡은 외국인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 극 중 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원 12명의 국적을 모두 다르게 설정했다. 외관상 실제 용병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미국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1천여편의 오디션 비디오를 본 뒤 일부는 실제 용병 출신 배우를, 일부는 할리우드 현지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선발했다.
-- 주인공 캡틴 에이햅은 어떻게 구상했나.
▲ 허먼 멜빌의 고전 '백경'의 주인공 '캡틴 에이햅'에서 따왔다. 흰고래를 잡으려다 다리 한쪽이 잘리고 선원들을 다 잃은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 속 에이햅의 초반 처지와 비슷했다. 극 중 에이햅은 6년 전 낙하산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었다. 에이햅의 팔에 고래 문신을 새겨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에이햅은 마냥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동료를 구하려다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용병 생활을 한다. 작전 중에는 각자도생을 말하다가도, 남을 생각하는 면면도 엿보인다. 실제 대부분 사람이 그렇지 않나. 관객들이 그런 내적 갈등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에이햅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햅과 친구가 되길 바랐다.
-- 영어 대사에 한글 자막, 뉴스 화면, 교전 상황, 배경 음악 등 많은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전해져 '정신없다'는 반응도 있다.
▲ 그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려면 안구운동이 필요하다. 초반에 뉴스 영상을 빠르게 흘려보낸 것도 관객들에게 안구운동을 시키는 차원이었다. 자막의 경우 한국 관객은 자막 보는 데 익숙해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 시나리오는 한글로 제가 썼다. 이어 영어 대사로 바꾼 뒤 다시 한글 자막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이중, 삼중의 수고가 들었다.
--북한의 킹이 등장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나온다.
▲ 킹의 경우 실존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다른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기존 한국영화에서 남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다. 세계관을 넓히고 싶었다. 한걸음 뒤에서 보면 남북한 뒤에는 미·중이 존재하고, 그런 측면에서 강대국들의 대립을 배제할 수 없었다.
-- 현장감을 살리다 보니 이선균의 대사가 묻힌다는 지적이 많다.
▲ 확실히 전달해야 하는 대사는 무조건 들리도록 했다. 총성에 묻힌 대사들은 의학적 용어들로, 굳이 관객들이 알 필요는 없어 현장감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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