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 아내에게만 줘 성별 역할 규정' 오해 소지"
"긍정 기능·현실 무시, 겉모양만 바꾸는 건 단편적"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고쇼가와라(五所川原)시가 시 당국이 주는 포상수상자와 명예시민의 아내에게 주는 기념메달인 '내조공로장(內助功勞章)"을 폐지한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고쇼가와라시는 최근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사람과 각종 포상자의 배우자에게 "내조공로장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한 조례를 폐지했다. 이 조례는 2005년 행정구역 합병시에 제정됐지만 합병 전부터 각 지자체가 운영해 오던 제도였다.
시 당국이 조례를 폐지한건 메달을 여성수상자의 남편에게는 주지 않기 때문에 "성별 역할을 규정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쇼가와라시의 조례폐지를 계기로 비슷한 포상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제도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쇼가와라시는 그동안 시장이나 시의원,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 어린이와 임산부 지원활동을 하는 민생위원 등 57명을 표창했다. 남성이 46명, 여성이 11명이었다.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고 수상자의 아내 43명에게 기념메달을 수여했지만 남편이 메달을 받은 사례는 없다.
시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내조'는 여성을 지칭하기 때문에 관례적으로 남성 수상자의 아내에게 수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메달을 받은 한 여성은 지역봉사활동을 하는 남편을 40년 이상 뒷바라지하면서 4명의 자녀를 양육했다. 그는 "메달을 받았을 때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는데 제도가 없어진다니 서운하다"고 말했다. 수상자인 남편도 "늘 집을 비웠는데 아내가 메달을 받아 위로가 됐는데 시 당국이 굳이 남녀평등에 신경을 쓴 거라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겠느냐"며 아쉬워했다.
취임한지 얼마 안된 사사키 다카마사(佐?木孝昌) 시장은 "여성이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던 시대와 이상적인 부부상이 달라진 지금은 메달의 명칭과 운용도 행정 당국의 생각을 반영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면서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폐지를 계기로 남녀공동참여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조'가 문제된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도 있다. 고치(高知)현에서는 25년 이상 소방단원으로 활동한 사람의 아내에게 지사가 감사장을 주는 '내조공로자감사장'제도가 있었으나 2014년 현 의회에서 문제가 제기돼 '배우자공로자에 대한 지사의 감사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명칭 변경 후에도 남성이 감사장을 받은 적은 없다.
가족사회학자인 마쓰노부 히로미(松信ひろみ) 고마자와(駒?)대학 교수는 25일 아사히(朝日)신문에 "폐지는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말했다. "내조공로장이라는 명칭은 여성의 역할을 고정할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제도도 연상케 한다"는 설명이다. 히카게 야요이(日景?生) 히로마에(弘前)대학 교수는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부부가 용인되는 사회인 만큼 하나의 틀로 규정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블로거로 전업주부인 가즈(55) '국경없는 주부단' 총재는 "주부 혼자서 육아와 부모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 등을 곁에서 돌보는 것)을 맡아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게 현실인데 비판이 있다고 해서 겉모양만 바꾸는건 단편적"이라고 비판했다.
'비밀결사 주부(主夫)의 벗' 멤버로 블로거인 사쿠마 슈이치(佐久間修一.51)는 "'내조'에 대한 해석을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주부(主夫)나 주부(主婦)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행정 당국이 인정해 주는건 의미가 큰데 그런 기회를 없앤 게 아쉽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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