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해 노무현 정부 최대 비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이른바 '론스타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을 십수 년째 끈질기게 추적 중인 언론인이 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은 신간 '투기자본의 천국'을 통해 론스타 게이트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 책임 소재를 좇는다.
제일은행, 한미은행, 외환은행 매각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공적 자금 투입, 김앤장법률사무소와 정부 관료들의 관련성, 글로벌 투기자본의 역학 관계와 국부 유출 역사, 투자자-국가 간 소송 문제 등을 상세히 담았다.
지난 2006년 초판의 개정판인 이 책에서 저자는 론스타 게이트에 등장한 수백 명의 인물, 수만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판결문·국회 상임위원회와 국정감사 자료, 관련 기자회견과 토론회 자료,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비공개 자료 등을 읽고 인용하며 사건 내막을 드러내려는 치열함도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2006년 출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의 필독서로 불렸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누군가 1쇄를 모두 쓸어갔고, 소량으로 찍은 2쇄도 일찌감치 팔린 뒤 절판됐다"며 모종의 의혹도 제기했다.
저자에 따르면 론스타 게이트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1997년 외환 위기의 망령이다. 특히 오랜 논란과 공방으로 많은 사람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사건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건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2003년 적자에 시달리다 이듬해 곧바로 흑자로 돌아서고 2005년엔 당기순이익이 2조원 가까운 수준으로 증가한 외환은행이 투기자본인 론스타에 매각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매각에 관여한 인물과 기관을 중심으로 규명하려 한다.
모피아(옛 재정경제부 관료들의 카르텔을 일컫는 속어), 검은 머리 외국인, 김앤장을 "불법 매각" 핵심으로 주장하는 한편, 당시 국정을 이끈 정치인들에 대한 책임도 추궁한다.
저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사건의 실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여전히 활동 중인 수많은 정·관·재계 인사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해 다소 위험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지만, 저자 손에서 움직이는 펜은 거침이 없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추천사에서 "국민 경제 이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치인과 정부 관료마저 많은 수가 사실상 금융 자본의 로비스트가 돼 가는 상황에서 과연 국민 경제를 살릴 길은 없을까"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다.
인물과 사상사. 564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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