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저는 올해에 스물셋이니 이제 막 인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셈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인생은 더 이상 신비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벌써 인생의 끝까지 다 걸어버린 듯합니다."
1980년 중국에서는 이른바 '판샤오(潘曉) 토론'이 벌어졌다. 잡지사 '중국청년'(中國靑年)이 발기하고 신문사 두 곳이 참여한 토론 주제는 인생관, 청년들이 겪는 정신적 위기였다. 판샤오는 여공 황샤오쥐와 대학생 판이를 합쳐 만든 이름이었다.
중국 사상사와 현대문학을 연구하는 허자오톈(賀照田)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은 판샤오 토론을 비롯해 중국 당대 사상논쟁을 다룬 논문을 모은 책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창비 펴냄)에서 1980년대 중국 청년이 경험한 정신적 고뇌에 주목한다.
그는 판샤오 토론에 대해 "마오쩌둥 시대와 신시기(1978년 이후) 정신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심도 있게 파악하고자 할 때 가장 적절한 입구"라면서 "최근 30여 년의 정신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별한 인식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판샤오 편지에서 중국 청년들은 발달하는 물질문명을 누리면서도 허무함을 토로했다. 가치의 상실과 정신적 공허를 채울 만한 대상도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정신적 공백의 원인을 현대사에서 찾는다. 그는 공산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안에 정부가 선전하는 새로운 윤리와 정서가 올바르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는 전통적 가치와 충돌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단적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많은 중국인이 선전 이데올로기와 공산당이 설파하는 올바름에 대해 회의감을 품었다.
저자는 "전사회적으로 공산주의적 신인간 창조에 매진한 마오 시대에 정신과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보낸 젊은 세대는 열광했던 만큼 허탈하고, 열렬했던 만큼 냉담하고, 광신했던 만큼 허무한 심리 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중국 정부와 지식계가 신구 가치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메울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2000년대까지 중국의 정신적 곤경이 이어졌다면서 "당대 중국의 정신윤리 문제에 대해 국가나 지식인은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고찰과 분석 없이 자신들의 해석을 내놓았다"고 비판한다.
불안과 허무, 혁명적 이상주의로 가득한 중국인의 관념구조를 설명한 저자의 글은 통찰력이 있지만, 상당히 난해하다.
해제를 쓴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저자가 중국의 혁명과 사회주의 실천을 긍정적 사상자원으로 발굴하려고 시도한다면서 이러한 태도를 통치 정당화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사회주의는 수십 년 동안 중국인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역사적 실체"라며 서구적 시각으로 중국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임우경 옮김. 348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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