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의회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수단으로 쫓아낼 것" 트윗 글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성탄절을 맞아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 미군 기지 깜짝 방문이 이라크 내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미군 철수 여론을 고조시키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중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핵 개발 의혹을 빌미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11년 사실상의 점령통치를 끝내고 이라크에서 군대를 빼냈다.
그러나 전쟁으로 치안 체계가 망가진 상황에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좇는 이슬람국가(IS) 같은 무장세력이 활개를 치자 이라크 정부의 요청을 받은 미국은 2014년 이라크에 다시 군대를 파견했다. 미군은 현재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알아사드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2003년 전쟁 때 이라크 공군기지이던 알아사드 기지에는 5천200여 명의 미군 병력이 배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탄절을 맞아 26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알아사드 캠프를 3시간가량 예고 없이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주요 참모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의 당위성을 강변했다.
AP통신은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이라크 방문이 분쟁 지역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제대로 위문하지 않는다는 미국 내 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릴지 모르지만 이라크 내에선 미군 철수와 주권침해 논란 등의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의회에서 2대 정파인 '이슬라'를 이끄는 사바 알 사이디 의원은 "미국의 이라크 지배는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이라크가 미국의 한 주(州)인 것처럼 들어왔다"며 비밀리에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장병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라크에서의 철군 계획은 없으며, 향후 필요할 경우 시리아 공습 거점으로 알아사드 캠프가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이라크 정치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슬라 소속인 하킴 알자밀리 의원은 "러시아든, 이란이든 미국이 맞붙는 장소로 이라크가 활용돼선 안 된다"며 트럼프의 발언을 겨냥했다.
이라크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주요 도시의 거점 지역에서 IS 세력을 몰아낸 뒤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북부 지역의 IS 소탕전에서 활약했던 친(親)이란 민병조직 '앗사이브 아흘 알하크'를 이끌고 있는 카이스 카잘리는 트위터에 "(이라크) 의회가 미군을 쫓아내기 위한 표결을 추진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의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민병조직원들이 (무력 등) 다른 수단을 동원해 쫓아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라크 정치 애널리스트인 지아드 알아라르는 AP통신에 "트럼프의 (알아사드 기지) 방문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반대하는 정당이나 무장 정파에는 엄청난 사기 진작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를 아사드 공군기지로 불러 만나고자 했으나 면담 방식 등 의전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회동이 성사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이라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례와 이라크 주권 무시를 비난하는 여론도 일고 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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