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일실무회의 다음날 초계기 촬영 영상 공개…갈등 더 부추겨
軍 "영상에 승무원 다급한 목소리 없고 회피기동 장면도 없어"
日초계기, 광개토대왕함과 거리 500m·고도 150m까지 접근…韓 "위협비행"
日초계기, 무선교신서 자신들을 '자위대' 아닌 '해군'으로 칭하기도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우리 해군 함정이 동해 대화퇴 인근 어장에서 조난한 북한 어선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레이더를 가동한 것과 관련해 28일 일본 정부가 당시 자국 초계기 촬영 영상까지 공개하면서 갈등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0일 독도에서 동북방 180여㎞ 떨어진 대화퇴어장 인근 한일 중간수역에서 조난 어선 수색 임무를 수행한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만재배수량 3천900t급)을 찍은 영상을 이날 공개했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에 근접 비행한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촬영한 것이다.
자위대와 정부 인사, 언론매체 등을 동원해 "록온(무기 조준까지 한 상태)", "뒤에서 총을 쏘는 행위" 등 거친 언사로 불만을 쏟아내 온 일본은 여드레째 공세를 이어갔다. 양국의 주고받기식 공방 속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일본 방위성 홈페이지]
◇ 日, 13분 7초짜리 영상공개…軍 "화기레이더 조준됐다면 초계기 회피기동 했어야"
일본은 이날 P-1 초계기가 지난 20일 오후 2시 55분부터 3시 15분까지 촬영한 영상 중 13분 7초 가량을 보여줬다. 영상에는 당시 해상에서 구조 활동 중이던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5001함의 모습이 나타난다.
영상을 분석한 우리 군의 한 관계자는 "영상 촬영 당시 일본 초계기와 우리 광개토대왕함의 최근접 거리는 500m이고 고도는 150m로 나타났다"면서 "우리 함정의 함장과 승조원들은 굉장한 위협으로 느꼈다"고 밝혔다.
특히 P-1 초계기는 광개토대왕함 150m 상공으로 저공비행을 했는데 한차례는 함교 위로, 또 한 차례는 함정 위로 날았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에 의하면 항공기는 고도 150m 아래로 비행하면 항공기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본 측은 고도 150m 저공비행에 대해 ICAO 규정을 준수한 것이라고 우리 측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군 관계자는 "IACO 규정은 민항기에만 적용되는 규정으로, 군용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상에는 일본 초계기 승무원들이 오후 3시 3분부터 7분까지 4분간 "화기관제 레이더가 탐지됐다"고 상호 교신하는 음성이 나온다. 이어 3시 8분부터 2분간 또 한차례 "화기관제 레이더 신호가 탐지됐다"고 교신하고 있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거나 초계기가 회피기동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함포가 (초계기를) 지향하는지 확인하겠다", "전자파가 대단히 큰 소리다"라고 교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초계기가 대공무기를 탑재한 구축함으로부터 이런 위협을 받았다면 회피기동을 하거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군 관계자는 "전자파 조사(照射)를 받았다면 기체를 회피 기동해야 했고, 승조원의 목소리도 다급한 음성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이런 정황으로 봐서도 당시 초계기에 대한 위협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 초계기는 영어로 "Korea South Naval Ship"이라고 여러 차례 무선교신을 시도하는 장면도 나온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찌직'하는 잡음 소리와 함께 이 영어 음성이 그런대로 들린다. 이에 군 관계자는 "공개된 영상에 섞인 잡음 소리 세기로 봐서는 우리측 수신체계에서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면서 "일본 초계기 승무원의 영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고 잡음도 심해 해경을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고 전했다.
우리 측은 일본 측에 대해 초계기가 탐지했다는 '화기관제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 측은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초계기가 화기관제 레이더(STIR)를 탐지했다고 교신하지만, 결정적 증거인 주파수 특성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주파수 특성이 나와야 객관적으로 어떤 레이더인지 알 수 있다. 교신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으며 일본 측 주장이 합당한지를 규명하는 스모킹건은 주파수 특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스모킹건이 되는 주파수 특징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주파수 특성을 제시하면서 재원을 확인해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하는 것이 우선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군 관계자들은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 일본 초계기 승무원들이 "This is Japan Navy(여기 일본 해군이다)"라며 자신들을 '해군'으로 칭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없어 우리의 군(軍)에 해당하는 조직을 '자위대'로 부른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영어로 '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s(JMSDF)로 표기한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해군'이라고 칭한데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게 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큰 틀에서 보면 헌법 개정을 통해 교전권을 보유한 '보통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 아베 정권의 지향이 투영된 호칭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일본 초계기 승무원들이 자신들을 '해군'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부적인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日초계기, 韓함정 150m 상공 두 차례 비행" vs "아냐"…핵심사안 주장 여전히 엇갈려
일본의 영상 공개에 앞서 양국 국방 당국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사안을 놓고도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왔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자 27일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인 김정유 육군 소장과 일본 통합막료감부(우리의 합참)의 이케마쓰(池松) 수석 참사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무급 화상회의를 가졌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우리 군 당국은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근접 비행을 했기 때문에 광학카메라(EOTS)를 켜서 초계기 쪽으로 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열 감지 방식으로 영상을 찍을 수 있는 광학카메라는 추적레이더(STIR)와 붙어 있어 카메라를 켜면 이 레이더도 함께 돌아가게 되어 있다.
당시 일본 초계기는 두 차례에 걸쳐 광개토대왕함 150m 상공을 비행했다. 한 차례는 함교 위로, 또 한차례는 함정 위로 비행했으며, 위협비행으로 판단할 만 했다고 군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군 관계자는 "군함은 해당 국가의 영토와도 같고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곳"이라며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 함정 상공의 150m 고도로 비행하는 것은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방위성은 25일 내놓은 자료를 통해 "해상자위대의 P1 초계기는 국제법과 일본의 관련 법령을 준수, 해당 구축함으로부터 일정 고도와 거리를 두고 비행한 만큼 해당 구축함 상공을 저공 비행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광개토대왕함에서 일본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 빔을 쐈는지에 대해서도 양국의 주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우리 군 관계자들은 "광학카메라를 켰을 때 스티어(STIR·추적레이더)가 함께 돌아갔지만, 초계기를 향해 빔은 방사하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일본 해상초계기를 위협한 행위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해군 함정에 탑재된 사격통제 레이더는 광범위한 탐색을 목적으로 하는 탐색레이더(MW08)와 사격을 위해 표적에 빔을 쏴 거리를 계산하는 STIR가 있는데 당시 우리 해군 구축함은 탐색레이더만 대함 모드로 가동했다고 한다.
초계기가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대공 모드로 가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도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가동 실태를 검열하는 과정에서도 레이더 빔을 조사(照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합참 관계자는 24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통상적으로 보면 한 나라의 군함 상공으로 초계기가 통과하는 것은 이례적인 비행"이라며 "우리 구축함은 이런 일본 초계기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서 조난 선박 탐색을 위해 운용하고 있던 추적레이더에 부착된 광학카메라를 돌려서 일본 초계기를 감시하게 되었고 그 과정 중에 일체의 전파 방사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방위성은 자국 초계기가 "일정 시간 지속해서 복수에 걸쳐 조사(照射)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도 28일 오전 각의(국무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한국군의 구축함으로부터 레이더 조사(照射)를 받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일본의 해상초계기가 우리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무선교신을 시도했는지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일본 방위성은 25일 "3개의 주파수를 사용해 '한국 해군 함정, 함번 971'로 영어로 3회에 걸쳐 호출, 의도를 확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국산 1호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의 함수 측면(흘수선)에는 함정 고유번호인 '971'이 표기되어 있다. 일본 방위성의 주장대로라면 광개토대왕함을 무선으로 호출한 것이 맞다.
이에 우리 군 관계자들은 당시 초계기에서 국제상선공통망으로 교신을 했는데 잡음이 심하고 통신감도(感度)도 낮아서 해경을 호출한 것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합참 관계자는 "그 당시 무선교신과 관련해서는 일부 통신내용이 인지됐지만, 통신 강도가 너무 미약하고 잡음이 심했다"면서 "우리는 '코리아 코스트'(해경)라는 단어만을 인지했었고, 조난 선박 구조 상황 때 그 주변에 해경함이 있었기 때문에 해경함을 호출하는 것으로 인지를 했다"고 밝혔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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