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업체 뒤로 빠지고…해외 수입·수출업체 상호결제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아프리카 적도기니의 임업 회사 '칠보'(Chilbo)는 지난해 중국 업체 '위안이(Yuanye) 우드'에 목재를 수출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된 칠보는 사실상 북한의 통제를 받는 업체로 알려졌다.
그런데 위안이 우드는 정작 상품대금을 싱가포르의 중개상에게 입금했고, 이는 제3국의 원유 수출중개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대북 원유수출 대금을 우회 결제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국제금융 결제망에서 '북한'이라는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북한으로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금지된 불법 무역의 수출입 대금을 은밀하게 결제한 셈이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북한이 제삼자 조력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달러 제재 망을 기술적으로 우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쉽게 말해 북한 업체가 국제금융시스템의 뒤로 빠지는 대신, 대북(對北) 수입업체와 수출업체가 상호 결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결제 금액도 잘게 쪼개서 이체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제금융 결제망에서 '북한'이라는 실체를 구분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불법 무역이 가능한 것도 '그림자 무역결제' 덕분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워싱턴의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은 "북한으로는 적은 금액만 입금될 뿐"이라며 "대부분의 자금은 해외에서 곧바로 결제된다"고 말했다.
가령, 홍콩에 있는 업체는 북한으로부터 파라핀 왁스를 사들였지만, 정작 수입대금은 러시아의 석유 관련 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북한으로부터 석탄을 사들인 중국의 수입업체는 중국 통신업체인 ZTE에 대금을 지급했다. 북한이 ZTE로부터 통신장비를 사들인 대금을 우회 지급한 것으로 미국 당국은 보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한 몇몇 업체들도 북한에 설탕 및 요소비료를 공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독자제재를 단행한 싱가포르 기업 2곳과 개인 1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앞서 재무부는 지난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싱가포르 무역회사인 위티옹 및 해상연료회사인 WT마린, 그리고 이들 업체의 책임자인 싱가포르 국적의 탄위벵(41)을 제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은 이러한 '그림자 무역결제 시스템'을 수년간 구축해왔다"면서 "달러 결제망에서 배제된 북한이 석유와 석탄, 담배 등의 무역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것도 이런 은밀한 구조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전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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