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마주앉겠다" 김정은 신년사에 트럼프 "나도 고대" 트위터로 '화답'
트럼프 '경제적 잠재력' 언급하며 '당근' 제시…'탑다운 소통'으로 교착 뚫기
'완전한 비핵화' 개념·로드맵 놓고 여전한 간극…김정은 '경고메시지'도 변수
정상간 담판 의지 뒷받침할 고위급 회담 개최 관건…북미관계 기상도 좌우할듯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답답한 교착국면을 이어가던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새해 벽두에 접어들며 새롭게 '숨통'을 틔우는 모습이다.
북미 정상이 2차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서로 간에 '긍정 신호'를, 그것도 공개적 방식으로 주고받은 데 따른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지 약 23시간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나도 북한이 위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는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라고 말했다.
"나도 김 위원장과 만남 고대"…트럼프, 김정은에 화답 / 연합뉴스 (Yonhapnews)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초 북미 뉴욕 고위급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2차 북미정상회담 기대감을 줄곧 내비쳐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귀국길에는 "내년 1월이나 2월 열릴 것 같다. 세 군데의 장소를 검토 중"이라며 회담 시점과 장소를 한층 구체화했다.
이어 성탄 전야인 24일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보고를 받은 뒤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다음 정상회담을 고대하며"라는 말을 트위터에 적기도 했다.
그러나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소통이 '꽉 막힌' 상황에서 두 정상이 '직접 담판' 의지를 확인한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다.
실무협상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톱 다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더 생산·시험·사용·전파하지 않을 것을 내외에 선포하고 실천적 조치를 취해왔다"고 밝힌 대목이 돌파구의 '입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김 위원장의 선언은 북한의 관련 언급 중 사반세기 만에 나온 첫 선언"이라며 "미국이 진의를 잘 분석할 것이고 이는 (협상) 진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도 WSJ에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이 핵물질 생산 동결과 핵무기 및 핵물질의 타국 판매 금지에 동의하는 데 준비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며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에 미치지 못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조치들이 성실하게 이행된다면 중요한 과도적 단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경제적 잠재력'을 언급한 것에 주목하는 시각이 나온다.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제공할 것임을 분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새해의 초점을 '경제'에 맞추고 있는 점에 주목해 비핵화와 연계해 미국이 '화끈한 당근'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핵화의 기본개념과 초기수순을 비롯한 향후 로드맵을 놓고 양측의 '괴리'가 너무 큰 점이 문제다. 가장 기초적인 쟁점으로 볼 수 있는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선후(先後) 관계를 둘러싼 갈등조차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만남을 위한 만남'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작년 6·12 첫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공동성명을 가일층 구체화해 '알맹이 있는'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풀영상] 북한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 발표…"조선반도에 평화기류" / 연합뉴스 (Yonhapnews)
특히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미국의 상응 조치를 촉구하는 '양면적인'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계속 중단하고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하지 말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들고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기존 핵무기 폐기나 핵시설 리스트 제출 등 미국의 요구 조건에 대해선 외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애써 간과했거나, 직접 담판해 풀겠다는 자신감이 녹아든 것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새 길' 발언은 경고의 성격을 분명히 띠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수위 조절을 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김 위원장은 핵·경제 병진노선으로의 회귀 등에 대한 직접 언급 없이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상황적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톤을 낮췄다.
개리 새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은 WSJ에 "('새 길' 관련) 표현은 북한이 제재 완화를 얻지 못하더라도 외교적 프로세스가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실천에 회의론이 적지 않은 가운데 나온 김 위원장의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상응조치는 실무급 협상에서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이 "(신년사에서) 현재의 외교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양보나 새로운 제안에 대한 징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향후 북미 관계에 험로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앞서 국무부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논평할 기회를 사양한다"는 이례적인 입장을 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협상 진전을 이끌어낼 만한 구체적 조치가 담기지 않다보니 미국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을 제어하는 선으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과 미사일 위협의 '보류'가 아니라 '종결'을 목표로 제시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내려야 할 결정은 비록 북한을 파키스탄이나 인도, 이스라엘처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더라도 '북한 핵무기 제로(zero)'의 목표에서 철회하느냐 여부"라고 지적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NYT에 "북한의 핵심(bottom line)을 좀더 명료하게 알게됐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고 하는 게 타당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그에 따른 이익을 누리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매파가 이번 신년사를 어떻게 읽었을지도 관심사다. 이들이 비핵화 회의론을 토대로 김 위원장의 상응조치 요구와 '새 길' 경고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며 김 위원장의 협상 의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위태로운 비핵화 정국의 고비에서마다 강력한 북핵 해결 의지를 보인 점을 들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집권 3년차를 맞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선 고지에 등정하려면 '비핵화 열매'가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대화의 장기 실종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 인도적 대북 지원을 위한 북한 여행 금지 조치 재검토 등 유화적 신호를 보내며 협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정상 차원의 담판 의지를 뒷받침할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 여부다. 언제, 어디서, 어느 급에서, 어떤 의제로 고위급 회담이 열리느냐가 전체 북미관계의 기상도를 가늠해보는 풍향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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