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산 고지에 묻히고 싶다" 유언…유족협의로 부산 유엔묘지 안장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6·25전쟁 때 중국군(중공군)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육박전을 벌여 전쟁영웅으로 불렸던 영국군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빌) 스피크먼이 부산 유엔공원에서 영면한다.
3일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작년 6월 별세한 스피크먼의 유해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다음 달 중에 인천공항으로 봉환되어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된다.
영국군 병사로 참전해 영웅적인 공적으로 영연방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Victoria Cross)을 받은 스피크먼은 작년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영국 언론들이 그의 별세 소식을 크게 보도할 정도로 전쟁영웅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고인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1월 임진강 유역 마량산(317고지)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마량산은 해발 315m로 임진강 일대 저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당시 마량산에는 중공군 제64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이 수차례 점령에 실패했던 곳이다.
당시 24세로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1연대 소속이던 스피크먼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중공군에 맞서 수류탄 공격으로 적의 진격을 저지했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중공군과 수일째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에다 탄약도 떨어져 궤멸 위기에 몰렸다.
1951년 11월 4일 새벽 4시, 키 2m의 거구였던 스피크먼 이병은 다른 병사 6명과 함께 적진에 침투해 수십 개의 수류탄을 투척한 뒤 육탄전을 감행, 상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투 도중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소속 부대가 철수할 때까지 후퇴하지 않고 적과 맞서 싸웠다.
스피크먼 이병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전우들은 대오를 정비하고 심기일전, 진지를 4시간 넘게 사수하면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그는 1952년 1월 영국으로 후송됐지만 3개월 뒤 자진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같은 해 8월까지 전장을 지켰다.
이런 전공으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는 2015년 이 훈장을 한국에 기증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이름을 본떠 맨체스터의 건물과 다리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2010년과 2015년에 한국을 방문한 그는 "당시 수천 명의 중공군이 공격해왔는데 우리는 겨우 700명뿐이었다"며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류탄을 있는 대로 모아 내던졌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영국 사람들에게 늘 한국의 발전상을 이야기하며 '내가 그곳에서 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며 "군인은 언제나 자기가 싸웠던 장소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죽으면 재가 돼 이곳(마량산 고지)에 묻혀 영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보훈처 관계자는 "한국에 안장되길 희망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에 대해서는 별세 후 유족과 협의해 부산 유엔묘지로 모시고 있다"며 "고인도 유족들과 협의한 끝에 부산 유엔묘지에 모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three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