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이 쌓아올린 '대한콜랙숀'…3·1운동 100주년에 만나다

입력 2019-01-03 15:47  

간송이 쌓아올린 '대한콜랙숀'…3·1운동 100주년에 만나다
DDP 마지막 간송전 통해 운학문매병 등 최정상급 문화재 전시
'문화재 독립운동가'의 지난한 수장 여정과 교육자 면모에 방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36년 11월 22일 경성미술구락부. 지금 명동 프린스호텔에 자리한 구락부는 당시 경성에서 유일하게 고미술 경매를 전담했다. "합법적인 문화재 반출구였던(한만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실장)" 이곳에 이날 목이 긴 백자병 하나가 등장했다. 한때 참기름병 신세로 전락했다가, 그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 수장가들을 거쳐 경매에 나온 것이었다.
500원 호가는 금세 1천 원을 넘어 9천 원에 도달했다. 경매는 일본 거상, 야마나카 상회와 일본인 골동품상인 신보 기조(信保喜三) 경쟁으로 좁혀졌다. 10원까지 올려가며 다툰 끝에 결국 병을 손에 쥔 이는 '1만4천580원'을 부른 신보 기조, 아니 그가 대리한 30세 조선인 사업가였다.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존경받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역사 속에서 빛난 순간 중 한 장면이다. 이 병은 훗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라는 이름을 얻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됐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비롯한 주요 소장품을 간송 삶과 더불어 돌아보는 전시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다.
하루 앞서 언론에 공개된 전시장에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최정상급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려 최고 명품으로 평가받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과 정선이 금강산 경치를 뛰어난 필치로 담아낸 '해악전신첩', 추사체 참모습이 함축된 추사 김정희 대표작 '예서대련' 등이 눈을 즐겁게 했다.



이번 전시의 초점은 이들 문화재보다 사실상 '문화재 독립운동'을 벌인 간송에게 맞춰졌다.
유명한 갑부 집안에서 태어나 문화재를 수집하고자 '억만금'을 내놓았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간송이 20대 때부터 우리 문화재들을 구하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보여준다.
간송의 관심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을 비롯한 한반도 내 문화재 거래망뿐 아니라 바다 건너까지 뻗어 있었다. 전시에서는 그가 일본에 주재한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의 조선 도자 컬렉션을 확보하고자 사력을 다했던 모습 등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소개된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 의미 있는 전시다.
한 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간송이 지나온 시간을 보면 (시대상) 암울한 시간이 많은데 그사이 지켜낸 유물은 문화재 이상 가치가 있다"라면서 "이번에는 '히스토리 텔링'을 적용해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시가 보성학교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교육자로서 면모를 부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간송은 3·1운동 중심에 섰다가 폐업 위기에 몰린 보성학교를 1940년 인수해 민족교육에 힘썼다.
전시장에는 광복 후 매년 3월 1일에 진행된 보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낭독하기 위해 간송이 직접 필사한 독립선언서 원본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는 지난 5년간 DDP에서 열린 간송 특별전의 마지막 행사다. 간송미술관 측은 이르면 올가을부터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전시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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