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폭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아기를 안은 한 소년이 걸어간다. 소년의 눈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담겨있다.
영화 '더 서치'는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의 비극을 한 소년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2012년 '아티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작품으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1948년작 영화 '수색'을 리메이크했다. 전쟁의 폭력에 노출된 어린 소년이 충격으로 말을 잃게 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전쟁으로 눈앞에서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본 아홉 살짜리 체첸 소년 하지(압둘-칼림 마마츠예프 분)는 18개월이 된 동생과 함께 폭격으로 폐허가 돼 아무도 남지 않은 마을을 빠져나온다.
하지는 동생을 감당할 수 없어 이웃집 문 앞에 버리고 피난민 무리에 합류한다. 국제 적십자 난민 대피소에서 소장 헬렌(아네트 베닝)을 만나지만 죄책감과 슬픔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피소를 도망쳐 나와 거리를 헤매다 유럽연합(EU) 인권활동가 캬홀(베레니스 베조)과 만난다.
처음엔 캬홀에게도 입을 열지 않는다. 불어를 쓰는 캬홀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캬홀의 노력에 점점 마음을 연다. 캬홀이 출근을 해야만 밥을 먹고 슬픈 음악만 듣던 하지는 그와 함께 식탁에 앉고 비지스의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춘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은 하지뿐만이 아니다. 체첸 피난민들로부터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으면서도 피상적으로만 공감하고 무덤덤했던 캬홀은 마침내 입을 연 하지의 사연에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하지와 그를 찾아 헤매는 누나 라리사, 그리고 콜리아(막심 에멜리야노프)라는 러시아 군인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전개된다.
마약 소지 혐의로 길에서 붙잡혀 강제 징집된 평범한 청년 콜리아는 전쟁의 참혹함과 군대 내 가혹 행위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이 거대한 폭력에 점점 물들어간다.
영화는 전쟁의 피해자로서 어린 소년을 전면에 두면서 전쟁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나 분명하다. 그동안 모두가, 특히 서방세계가 체첸 전쟁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캬홀이 UN에서 각국 대표들의 무관심 속에서 연설하는 장면에서는 유치원생도 알아챌 만큼 이 메시지가 직접적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어지는 연출도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이 같은 비극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와 콜리아 두 명의 이야기를 같이 끌고 가면서 영화가 담는 의미는 더 극명해진다. 두 사람을 통해 전쟁이라는 사건이 개인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역설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서치'의 서사를 주도하는 것은 여성들의 연대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고 충격에 빠진 아홉살 소년과 미군의 이야기를 담았던 1948년작 '수색'과 달리 '더 서치'는 미군을 여성인 캬홀로 바꿨다.
캬홀 외에도 난민 캠프 원장인 헬렌과 하지를 찾아 헤매는 누나 라리사까지 전쟁의 한복판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해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캬홀 캐릭터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면 더 강한 울림을 줄 거라고 판단했다"며 "또 다른 이유는 체첸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용감했던 역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 역의 압둘-칼림 마마츠예프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 어린 배우는 영화 중반부까지도 대사 한마디 없이 하지의 죄책감과 슬픔이 가득 담긴 눈빛을 표현해낸다.
오는 17일 개봉.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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