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로 남은 80년전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원색사진

입력 2019-01-06 08:00  

엽서로 남은 80년전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원색사진
함순섭 중앙박물관 고고부장 "한반도 최초 문화유산 원색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붉은색 옷을 걸친 사람이 커다란 새에 올라타 하늘을 난다. 옆에는 나무가 자라는 산이 있고, 멀리 또 다른 봉우리들이 보인다.
평남 강서에 있는 고구려 고분인 강서대묘(江西大墓) 벽화의 일부인데, 사람이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간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표현했다.
강서대묘 우화등선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만큼 생동감 있게 옮겨놓은 이 사진의 정체는 일제강점기 평양명승구적보존회(平壤名勝舊蹟保存會)가 발행한 '강서고분벽화원색그림엽서'(江西古墳壁畵原色繪葉書·이하 강서고분엽서)다.
1936년에 발행된 신문에서 강서대묘 사진 촬영 기사를 접한 뒤 관련 자료를 찾아온 함순섭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박물관이 펴내는 학술지 '고고학지' 제24집에서 강서고분엽서를 공개했다.
함 부장은 논문 '일제강점기에 만든 강서 고구려 능묘벽화의 원색사진'에서 "이 엽서는 경성제국대학이 1936년 10월 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사신도(四神圖)로 유명한 강서대묘와 강서중묘(江西中墓)를 찍은 사진과 관련이 있다"며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실사 촬영한 문화유산 원색사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1936년에 인쇄한 실물 크기 원색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엽서의 사료적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강서고분 촬영자는 다나카 도요조(田中豊藏) 경성제대 법문학부 미술연구실 교수와 사진부 주임인 엔조지 이사오(圓城寺勳)였다.
조사단은 일본에서 구하지 못하는 유리건판을 영국에 주문한 뒤 적색·녹색·황색·흑색 필터를 끼워 4색 분해 촬영했다. 석실 내부에는 인공조명을 설치하고, 고분 근처 숙소에 임시 암실을 만들었다.
함 부장은 "이들은 좁은 석실에 특별히 제작한 촬영기를 두고 벽화를 실물 크기로 찍었다"며 "촬영에 쓰인 유리건판은 300∼400매인데, 1937년 초반까지 인쇄했다"고 밝혔다.
대형 족자와 두루마리로 인쇄한 실물 크기 사진은 1937년 3월 25일 경성제대 졸업식에서 전시됐고, 적외선 사진과 채색 모사도도 진열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강서고분 원색사진이 일본 정부가 1935년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진행한 나라 호류지(法隆寺) 금당벽화 원색사진 촬영과 인쇄 작업을 맡은 교토 소재 인쇄전문회사 벤리도(便利堂)의 기술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함 부장은 벤리도가 발행한 도록을 살펴 호류지 금당벽화 촬영에도 초대형 카메라와 유리건판, 상하좌우로 조정되는 촬영 틀, 인공조명을 위한 전기 설비가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메라와 촬영 틀은 코니카미놀타 전신인 로쿠오(六櫻)사가 만들고, 유리건판은 영국 일포드 사에서 수입했다"며 "벽화와 90㎝ 떨어진 지점에서 조리개를 F22로 하고 40초에서 2분 사이로 셔터 스피드를 설정했다"고 덧붙였다.
함 부장은 "강서고분 벽화 촬영은 기술과 인쇄를 염두에 둔다면 벤리도가 진행했을 것"이라며 강서고분엽서를 인쇄한 곳도 벤리도라고 역설했다.



그는 2015년과 2018년에 각각 강서고분엽서를 구매했다. 그중 2015년 구매 엽서에는 1942년(쇼와 17년) 8월 2일에 평양부립박물관을 관람했다는 도장이 남았다.
두 강서고분엽서는 구성이 동일하다. 강서대묘 우화등선, 비천(飛天), 기린, 인동당초(忍冬唐草) 4매와 강서중묘 주작과 인동당초 2매다. 또 강서고분 설명과 강서 삼묘리 대묘 석실 구조도를 앞뒤로 인쇄한 해설문이 있다.
함 부장은 "일제강점기 관광엽서는 8매나 16매로 이뤄져 낙장이 있다고 의심했으나, 강서고분엽서는 원래부터 해설문과 원색사진 6매였을 것"이라며 "인위적인 모사도와 달리 벽면과 모줄임천장(돌로 덮어 모서리를 줄여나가다 천장을 막는 방식)이 왜곡 없이 촬영됐고, 벽화와 오염 부위 색감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사진엽서는 한 번 촬영한 사진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상당히 많은 설비를 동원한 강서 고구려 능묘벽화의 색분해 촬영은 1936년에 단 한 번만 이뤄졌으므로 사진엽서도 이를 계기로 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함 부장은 "유리건판과 벽화사진은 안타깝게도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향후 과제는 당시 사진을 인쇄한 회사를 찾아 인쇄용 필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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