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이르면 9월 서울 등 5개 시·도 시범시행
'주민밀착형' 치안 용이 전망…대다수 범죄수사는 '국가경찰'이 계속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문재인 정부 공약인 광역단위 자치경찰제가 이르면 올 하반기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시행된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선 치안시스템에 전례 없는 변화가 찾아올 전망이어서 당사자인 경찰이 느끼는 긴장도 상당하다.
서울, 제주, 세종 등 5개 지역에서 시범 시행되는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 사무와 인력 일부를 각 시·도 자치경찰로 이관해 지역 실정에 맞는 주민 밀착형 치안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의 중앙집권적 경찰권을 분산해 경찰권 남용 우려를 차단한다는 취지도 있다.
정부는 자치경찰제가 본격 시행되면 주민 요구를 반영한 탄력적 치안활동이 가능해지고, 경찰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풀뿌리 치안'이 구현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 경찰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정책적 실험이어서 불확실성이 큰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생활밀접형' 경찰사무, 국가경찰→자치경찰 이관
현행 한국의 국가경찰제도는 서울에 있는 경찰청을 정점으로 전국 각 광역시·도에 설치된 지방경찰청, 각 지방청에 소속된 경찰서, 경찰서 예하 지구대·파출소까지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갖춘다. 경찰 총수는 치안총감 계급인 경찰청장이며,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경찰청은 전국 경찰의 조직, 인사, 예산 등과 관련된 행정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장기 기획수사나 집중단속 등 각종 치안정책을 수립해 전국 경찰에 하달한다. 지역 경계를 넘나드는 광역범죄가 발생하면 본청이 콘트롤타워가 돼 주무 관서를 지정하거나 수사본부 설치를 지시하기도 한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이같은 중앙집권적 경찰체계에 속했던 경찰 사무와 인력 일부가 경찰청에서 각 시·도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이관 대상은 주로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들이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내놓은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도입안을 보면, 향후 도입될 자치경찰은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을 포함한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경비 등 주민 밀착형 치안활동과 관련 있는 업무를 국가경찰로부터 넘겨받는다.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교통사고·음주운전·공무집행방해 등 일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보유한다.
최종적으로는 전체 국가경찰(약 12만명)의 약 36%인 4만3천명이 자치경찰로 전환되고, 국가경찰 조직은 그만큼 축소된다. 자치경찰로 이관되는 경찰관들의 신분은 시·도 소속 특정직 지방공무원으로 바뀌나 제도 시행 초기에는 국가직을 유지하며, 지방직 전환은 추후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돼도 기존 국가경찰 조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보·보안·외사와 대다수 범죄 수사, 전국적으로 통일된 처리가 필요한 경찰 사무는 국가경찰이 계속 담당하는 이원 구조다. 긴급한 출동과 초동조치 등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공동 의무사항으로 둬 현장에 가까이 있는 경찰이 우선 출동하도록 했다. 국가경찰 소속 112상황실에는 자치경찰도 함께 근무하며 신고·출동상황에 공동 대응한다.
국가-자치경찰 간 사무 배분의 큰 틀은 제시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양측 간 업무협약으로 정해 지역별 치안 여건을 반영할 길을 열어뒀다.
자치경찰 조직은 광역시·도에 현재의 지방경찰청 격인 자치경찰본부를, 시·군·구에는 경찰서에 해당하는 자치경찰대를 두는 형태로 구성된다.
자치경찰본부장과 자치경찰대장은 시·도지사가 임명하되 지역 인사 등으로 이뤄진 시·도경찰위원회 추천을 받도록 하고, 시·도지사가 자치경찰 직무를 직접 지휘·감독하지 못하도록 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장치도 마련했다.
◇ "지역 치안여건·주민 요구 반영…민주·효율적 치안활동 가능"
자치분권위가 내세운 자치경찰제의 장점은 지역 치안 여건과 주민 요구가 치안정책에 반영되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간 유기적 공조가 이뤄져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치안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국가경찰 체제에서는 전국 단위 일제 지도단속이 지역 치안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이뤄지기 쉬웠다.
하지만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치안 관련 정보를 지자체와 자치경찰이 공유하면서 범죄 취약지점에 폐쇄회로(CC)TV나 가로등을 추가 설치하는 등 지역 치안여건에 탄력적 대응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교통 분야에서도 기존 국가경찰 체제에서는 경찰이 지도·단속과 사고 처리를, 지자체가 시설 관리와 개선을 각각 담당하는 이원 구조였으나 자치경찰은 지자체와 탄력적 업무협조를 통해 상습 정체구간 교통시설 개선, 교통사고 취약지점 안전 강화 등 조치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
지역 인사들로 구성된 시·도경찰위원회가 지역 치안정책을 심의·의결하고 집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으므로 치안정책에 주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통로도 확대된다는 것이 자치분권위의 판단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시각이 아닌 주민 시각, 즉 납세자이자 치안서비스 수요자들의 시각이 치안정책에 적극 반영된다는 것이 자치경찰제 도입 의의"라고 말했다.
◇ 5개 시·도부터 시범 실시…법안 준비 '박차'
자치분권위는 이르면 올해 9월 1단계로 서울 등 5개 시·도에서 자치경찰 사무 약 50%를 시범 시행하고, 2021년 자치경찰 사무 70∼80%를 전국에서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이어 2022년에는 전국에서 자치경찰 사무와 인력을 100%로 확대 시행하는 내용의 단계별 추진 일정을 마련한 상태다.
이처럼 큰 제도적 변화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가능한 만큼, 현재 자치분권위와 경찰청을 중심으로 입법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자치분권위가 내놓은 자치경찰제 도입안을 토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법안작업을 완료해 국회에 제출하고, 올 상반기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다.
법안은 경찰 조직과 직무 범위 등을 담은 기존 경찰법을 개정하거나 자치경찰법을 따로 제정하는 방식이 있다. 어느 쪽으로 입법할지는 자치분권위와 경찰이 협의해 추후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자치경찰제 도입이 가져올 부정적 변화를 우려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여론이 만만치 않아 자치경찰제 시행에 필요한 각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김순은 자치분권위 부위원장은 "국가 운영 틀에서 처음 도입하는 제도여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고, 생각지 못한 부작용은 없을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입법작업과 각론 구성 과정에서도 계속 의견 수렴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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