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경찰들 "현장상황 변화무쌍…국가-자치경찰 업무 구분 어려워"
업무 떠넘기기·처우 변화 불안…"자치경찰, 수요자 중심 서비스"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보다 자치경찰제 도입이 훨씬 영향이 큰 문제일 겁니다. 수사권 조정은 기관 간 권한 배분이라는 추상적 사안이지만, 자치경찰제는 국민과 접촉하는 치안현장이 달라지는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자치경찰제에 대한 관심이 너무 낮아요."
국가경찰 인력과 사무 일부를 자치경찰로 이관하는 광역단위 자치경찰제가 이르면 올 9월 일부 지역에서 첫 시범시행을 앞둔 가운데 한 경찰관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우려다.
한국 경찰제도에 전례 없이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는 만큼 전면 시행까지는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단계별 시범운영을 거쳐 보완점을 개선한다는 방침이지만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제도적 실험'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모른다며 염려하는 일선 경찰관들이 많다.
무엇보다 경찰 활동이 국민 생명·신체의 안전과 직접 관련된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를 낳는 부분이다. 자치경찰 시스템의 작은 결함이 현장에서는 치명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각자 사무를 담당하며 이원적으로 존재하는 점이 현장에서 상당한 혼선을 일으키지 않겠느냐며 부정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전국 경찰관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의 류근창 대표는 "현장 경찰관들의 업무는 발생-신고-접수-지령-출동-도착 및 처리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현장이 칼로 무 자르듯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업무로 쉽게 구분될 리 없다"며 "현장은 사람의 지문만큼 변화의 수가 많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무가 나뉘는 만큼 '업무 떠넘기기'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이런 우려를 막고자 국가경찰 112상황실에 자치경찰이 함께 근무하며 신고·출동에 공동대응하도록 하고, 긴급출동과 현장 초동조치 등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공동 의무로 둬 어느 쪽이든 가까이 있는 경찰이 먼저 출동한 뒤 소관 경찰에 추후 인계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에 한 경찰관은 "지금처럼 초동조치 과정에서 논란이라도 생기면 문책받는 분위기에서 자기 소관도 아닌 사안에 우선 출동해도 직원들이 몸을 사릴 우려가 크다"며 "이원적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려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공동사무를 최소화해야 그나마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자치경찰제 도입과 관련한 또 다른 관심사는 경찰관들의 처우 변화다. 향후 자치경찰 소속 경찰공무원은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신분이 전환되고, 소속이 국가기관인 경찰청에서 시·도로 옮겨진다.
최근 경찰 내부망에는 올해 32년 차라는 한 경위가 "현장 경찰 직급이 낮아 규제 행정업무에 어려움이 있다"며 "30년 이상 근무하고도 경위(6급)로 퇴임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계급 현실화를 통해 행정 공무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글을 올려 경찰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경찰이 다른 직렬 공무원과 비교해 과도한 승진 경쟁에 시달리고, 연금과 보수 등에서도 불이익이 있으니 자치경찰제 시행 전 현행 11단계인 경찰 직급체계를 자치단체 공무원처럼 9단계로 조정하고, 경찰 직군을 공안직에 포함해 직무에 따른 보상을 줘야 한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하는 '치안정책연구' 보고서도 "경찰서 단위가 자치경찰로 운영되면 서장은 4급으로 보는 총경인 반면 시장 및 구청장은 1∼3급 대우를 받으므로 지자체 기관장보다 자치경찰기관장 직급이 낮다"며 "지방공무원이 자치경찰공무원을 하위기관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지자체가 담당하던 여러 대민업무가 '주민 밀착형 치안행정'이라는 명목으로 자치경찰에 떠넘겨져 온갖 '허드렛일'까지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스러워하는 경찰관들도 적지 않다. 자치경찰 기관장 임명권을 자치단체장에게 주는 상황에서 정치적 중립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지적도 여전하다.
일선 경찰관들의 이런 우려는 패러디 글까지 만들어냈다. 작년 '민대장전'이라는 제목으로 경찰 내부에서 돌던 글에 자치경찰제를 보는 일선 직원들의 시각이 담겨 있다.
민씨 성을 가진 포도대장(경찰)이 사헌부 집안인 문씨 일파(검찰)에게 늘 밀리다 "일가의 4할을 지방 관아로 보내주면 문가를 무찌를 비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에 자식들을 지방 관아로 보낸다는 것이 '민대장전'의 내용이다.
지방으로 간 자식들은 도적 잡는 본업 외에 관아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 가운데 문씨 일파가 조정에 '민씨 일가가 지방 수령들과 결탁해 백성을 괴롭힌다'고 주청해 지방에 흩어져 있던 민씨 일가를 무찌르는 것으로 끝난다.
한 경찰관은 "한국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자치경찰제 도입도 한국 경찰의 치안활동에 문제가 있어 논의된 것은 아니다"라며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를 직접 연결지을 이유가 없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거래' 대상이 됐다고 여기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치안정책 패러다임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자치경찰제 도입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그간 제기된 우려나 비판이 대부분 국가경찰 시각에서 나온 것들인데, 자치경찰제는 자치경찰 관점으로 봐야지 기존의 국가경찰 시각으로 보면 다 문제로 보이지 않겠나"라며 "자치경찰제의 핵심은 경찰이 아닌 납세자 중심으로 치안행정 관점이 바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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