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파' 거느린 연출사진 선구자, 공근혜갤러리서 '나의 길' 작업 전시
'사진중단' 선언 24년째 고수…영상카메라 담은 '잃어버린 시간' 여정 보여줘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자동차가 달린다. 작가는 차를 멈추지도 않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일까. 초점이 맞지 않는다. 사진 아래쪽에는 차 보닛 일부분까지 담겼다.
그렇게 잡아낸 풍경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길이다.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베르나르 포콩(69) 개인전 '나의 길'(Mes Routes) 작업 대다수는 그렇게 평범한 길과 주변 풍경을 담았다.
"모든 위대한 예술과 사상은 매우 평범한 것에서 탄생합니다. 오히려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작품들이 애를 써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을 쫓으려 하죠."
4월께 한국을 방문하는 포콩을 서면으로 먼저 만났다.
프랑스 출신 포콩은 연출 사진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자연 그대로를 담는 '스트레이트 포토'만이 존재하던 1970년대, 포콩은 마네킹들을 사람처럼 배치하거나 사람과 마네킹을 한 공간에 둔 '여름방학' 연작을 선보였다. 사진작가의 영화적, 미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인 '미장센 포토'는 큰 반향을 낳았다. 그를 좇아 마네킹을 이용해 작업하는 '인형파'까지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도 '여름방학' 연작 중 '향연'(Le banquet) 빈티지 인화작 한 점이 나온다.
"사실을 그대로 담거나,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은 하나의 스타일에 해당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사진은 세상을 창조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 스타일을 부과하는 것이죠. 만약 제가 '미장센 포토'를 해내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 회화 작가가 됐을 겁니다."
작가는 "마네킹을 보면서 '미장센 포토' 가능성을 찾아냈다"라면서 "제 내면을 해설할 수 있는, 상상과 현실 경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품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던 작가는 1995년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멈추겠다고 선언해 주목받았다. 사진 대중화 시대에 기존 작업을 이어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다고 생각해, 당시 사진 작업을 멈췄어요. 요즘 세상 곳곳의 순간을 포착한 수천수만 장 사진이 넘쳐나지만,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던 깊이감은 사라진 채 상업적인 마케팅으로 변질했죠."
작가는 '셔터를 누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금껏 지키고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인 '나의 길' 영상 3편은 자동차 보닛 위에 영상카메라를 설치한 뒤, 무빙 이미지로 촬영한 것이다. 사진마다 하단에 보닛 일부가 등장하는 까닭이다. 함께 전시된 사진 30여점은 이 영상에서 추출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중국, 미얀마, 아르헨티나, 모로코, 베트남, 스위스, 쿠바, 튀니지, 알제리, 노르웨이, 한국 등 각국 길이 펼쳐진다.
'나의 길'은 포콩 '여름방학'이나 몽환적인 '사랑의 방'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밋밋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평범한 길을 따라 흘러가고 스쳐 가는 풍경 속 작가의 시적인 단상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자면, 각자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는 작가가 평생 일관되게 추구한 '잃어버린 시간'으로의 여정이기도 하다. 이제 일흔을 앞둔 작가는 '인생의 길'로 "제 고향인 프로방스 압트를 출발해 할머니가 계시던 포카퀴에로 향하던 길"을 꼽았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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