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과 친분 깊은 라치 전 상원의원 "北대사관 방문해 전모 파악 예정"
"조성길은 열렬한 체제 옹호자…북한 돌아가라 설득할 것"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조성길 대사대리는 누구보다도 북한 체제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의 잠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작년 11월 갑작스레 행방을 감춘 조성길(44) 전 북한 이탈리아 대사대리에 대해 그와 친분이 있던 안토니오 라치(70) 전 이탈리아 상원의원이 입을 열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 소속인 라치 전 의원은 다소 돌출적인 언행으로 현지 정가에서는 주류 정치에서는 벗어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작년 3월 총선을 앞두고 당의 공천에서 탈락해 야인 생활을 하고 있으나,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 이후 북한과의 깊은 인연 덕분에 최근 며칠 현지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라치 전 의원은 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작년 10월 29일 로마에서 조 대사대리와 식사를 했다"며 "그게 그와 마지막 만남이 돼 버렸다. 당시 그는 조금 어두워 보이긴 했지만, 동요하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조 대사대리는 이탈리아 기업인들이 동석한 당시 식사 자리에서 임기가 곧 만료된다는 소식을 전하며, 귀임 전에 가족과 함께 밀라노, 베네치아 등 북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라치 전 의원은 "1주일쯤 뒤에 다시 그와 통화를 했고, 11월 22일에 다시 만나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며 "하지만, 그날 식사 자리에는 그의 후임으로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와 다른 공관원만 나왔다. 그들은 조 대사대리가 여행 중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날 바로 조 대사대리에서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쭉 연락이 되지 않아 인사도 남기지 않고 떠났나 싶어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말수가 적었던 그는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말을 하면 참지 못하고 바로 화를 낼 정도로 북한에 대한 충성심이 큰 것으로 보였다"며 "이 때문에 그의 잠적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조 대사대리의 행방을 놓고 현지 언론이 다양한 추정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그가 지금 어디 있을 것 같냐고 묻자 "외교관 여권을 갖고 움직인 만큼 어디든 갈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한다고 했으나, 곧장 스위스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 이탈리아 북부와 국경을 접한 나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만간 그의 잠적을 둘러싼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로마의 북한대사관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그는 "조 대사대리가 이탈리아에 아직 남아 있다면 나에게 전화를 해주면 좋겠다. 그에게 평양에 돌아가라고 설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성길은 자신의 행동이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쳐 역내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성길의 신상과 관련해서는 북한대사관에서 14살쯤 된 그의 아들과 아내를 함께 만난 적이 있으며, 다른 자녀 1∼2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녀의 국제학교 재학 여부에 대해서는 "대사관 인근 학교에 다니는 것만 알고 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국제학교를 다니냐고 물어보는 건 실례라서 물어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조성길이 농업 부문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산업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베르가모, 파비아 등 이탈리아 북부를 가끔 방문하긴 했으나, 자신이 아는 한 북핵 실험 이후 엄격해진 국제 사회의 제재 때문에 고가의 가구 등 사치품을 북한에 조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작년 세 차례를 비롯해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총 13차례 북한을 방문한 친북 성향의 라치 전 의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3∼4년 전에 딱 한 번 만나 북한 축구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칼리아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북한 축구선수 한광성 등을 데려오는 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내서 그런지 축구, 농구 등 스포츠와 모든 종류의 음악을 다 좋아하는 것 같더라"며 "그는 부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보다 훨씬 유연해 핵 폐기에 있어서도 설득이 좀 더 쉬울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3년 전에 자신의 고향에서 생산되는 유명 와인인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초의 판촉을 위해 한국을 처음 가봤다는 그는 "남북한 사람들 모두 근면하고, 똑똑한 만큼 한반도 화해와 평화가 정착되면 어느 나라보다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잠적' 조성길의 행방은?…침묵 깬 伊북한대사관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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