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라도 던져야"…김성근의 '한국야구 향한 문제 제기'

입력 2019-01-08 09:50  

"돌멩이라도 던져야"…김성근의 '한국야구 향한 문제 제기'
"국가대표 감독 기준이 나이?…실력을 우선해야 하지 않는가"
"FA 등급제, 외국인 선수 보유 확대, 대학생 얼리 드래프트 등 도입해야"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김성근(77)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고문은 일본에서도 '미스터 쓴소리'로 통한다.
2018년부터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코치를 가르치는 코치'로 일한 김 감독은 지난해 1월 첫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였다. 이곳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프트뱅크에서 한 시즌을 보내며 김 감독은 팀의 코치들에게 여러 차례 쓴소리를 했다. 상대를 예우하면서도 "지도자는 선수 여러 명의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내 자식보다 남의 자식이 더 귀하다는 생각으로 일하라"고 말하는 등 비판을 동원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7일 서울시 강남구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성근 고문은 "시행착오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코치와 나 사이에 대화가 늘었다"고 했다.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회장은 "우리에겐 객관적인 눈으로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성근 코치 고문에게 "2019년에도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귀국한 김성근 고문은 1월 말,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애초 그는 "한국에 짧게 머무는 동안은 좋은 말만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야구 원로, 후배, 관계자 등을 만나 '한국야구'에 대해 논하면서 "돌멩이라도 던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고문은 '한국야구에서 비주류'로 분류됐던 재일교포 출신이다. 선수 시절부터 숱한 고난을 극복한 그는 지도자가 된 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김 고문이 자신을 '문제아'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내가 문제를 제기하면 날 선 비판이 나를 향하는 것도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논쟁하고, 싸워야 발전이 있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다. 또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한국야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 "국가대표 사령탑의 기준 나이?" = 김 고문은 최근 한 관계자로부터 "새로운 야구 국가대표 감독은 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말을 들었다.
김 고문은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누구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국가대표 감독은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실력이 아닌 나이가 기준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KBO는 이런 소문부터 차단해야 한다"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떠올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새로운 감독을 뽑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했다.
한국야구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 사령탑이었던 선동열 전 감독은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 논란에 시달렸고, 금메달을 따고도 국정감사 자리에 증인으로 섰다. 그 자리에서 몇몇 국회의원의 어이없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정운찬 KB0 총재도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섰고 "개인적으로는 전임감독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전임감독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결국, 선동열 전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
김 고문은 "정운찬 총재에게 야구인은 어떤 존재인가. 정 총재는 한국야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가 정치권을 향해 '야구 문제는 내가 책임진다'고 나섰다면, 지금 정 총재를 향한 비판은 존경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침묵한 야구인'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김 고문은 "선 감독을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비판은 하되, 국정감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야구인들이 나서서 집회라도 해야 했다"며 "모두가 자신의 안위만 생각했다. 함께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 고문은 '정운찬 총재 조언자'를 향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정 총재가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다'고 한다. KBO 내부에는 전문가가 많다. 또한, KBO가 조언을 구하던 기존 전문가들도 있다"며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기준으로 비전문가로 분류되는 사람, 혹은 과거에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 총재의 조언자 역할을 한다. 정 총재 주변 사람들은 정 총재가 왜 비판받고 있는지 거듭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FA 등급제·대학 얼리 드래프트 도입해야" = 김 고문은 시선을 '제도'로 돌렸다.
미아 발생 가능성이 큰 자유계약선수(FA) 제도와 야구 실업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김 고문의 눈에 들어왔다.
현재 FA 시장은 꽁꽁 얼어있다. 양의지, 모창민(이상 NC 다이노스), 최정, 이재원(이상 SK 와이번스) 4명 만이 FA 계약을 마쳤다. 남은 11명은 냉정한 평가 속에 계약에 난항을 겪고 있다.
김 전 감독은 "실력만 보면 꽤 많은 FA 들은 팀에 필요한 선수"라며 "규정이 FA 선수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FA 등급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타 구단 FA를 영입하려면 보상금과 보상 선수를 내줘야 한다. 이는 FA 영입을 막는 장애물이다.
김 고문은 "많은 부문에서 메이저리그를 지향하면서 왜 FA 제도는 한국형을 고수하는가. 미국, 일본 FA 제도는 '보상 기준'이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며 "FA 등급제를 도입해 준척급 선수에게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이적 시장이 더 활발해지고, 선수와 구단이 산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향해서도 '양보'를 청했다. 김 고문은 "프로야구의 질적 향상을 위해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은 유지하되 보유 한도를 늘리는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FA 등급제 도입을 위한 협상 카드라면 더욱 그렇다"며 "또한, 일본·대만과 선수를 교류하는 '아시아 쿼터제' 도입에도 찬성표를 던졌으면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갈 길도 터주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 고문은 "선수협이 현재 회장을 뽑지 못하고 있다. 선수협 선배들의 희생정신을 떠올려야 한다"며 "당장 올해 프로야구가 3월 23일에 개막한다. 선수 부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올해만큼은 비활동기간(12, 1월 팀 훈련 금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구단에 먼저 제의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FA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다.
국내에 머무는 동안 꾸준히 아마추어 선수들과 시간을 보내는 김 고문은 "대학 야구의 현실이 정말 척박하다"고 화두를 던졌다.
"대학 야구부 선수 대부분이 '예비 실업자'다"라고 지적한 김 고문은 "일단 대학 야구 수준부터 키워야 한다. 많은 고교졸업 예정자가 프로로 직행하지만, 곧 방출된다. 이런 선수들이 처음부터 대학에 와서 기량을 키운 뒤 프로에 도전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가 내놓은 방안은 프로배구 등이 시행 중인 '대학 얼리 드래프트'다. KBO도 대학 중퇴자들의 드래프트 신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대학 졸업 연도에만 프로 입단 지원서를 낼 수 있다.
김 고문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도전할 수 있다면, 프로에 직행하는 고교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한시적으로라도 각 구단이 최소한 몇 명을 대학선수를 지명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 "어린 선수들에게 특기를 살릴 기회를 주자" = 김 고문은 중·고교 야구까지 시야를 확대했다.
김 고문은 "학생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주자는 고교 주말 리그제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특기를 살릴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교 야구는 2011년부터 주말에만 경기한다. 서울시는 이를 올해부터 초·중·고교로 확대한다.
김 고문은 "공교육이 부실해지면 사교육이 활성화한다"며 "최근 학생들이 학교에서 야구 훈련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많은 돈을 들여 '개인 레슨'을 받는다. 학생 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커졌다. 이는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야구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특기를 살릴 시간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며 "최정과 박재상 코치도 훈련을 통해 장점을 발견했다. 제도가 시간을 빼앗아 아이들이 특기를 발견하고 살릴 기회조차 사라진다면 한국 스포츠 전체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야구협회는 물론 KBO가 문체부와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와 아마 쪽에 모두 문제를 제기한 김 고문은 "또 이렇게 욕먹을 짓을 한다"고 허허 웃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문제아'가 돌멩이를 던져야 논의라도 벌어지지 않겠나"라며 "내 주장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야구계가 조용히 지내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토론하고, 고민해서 한국야구가 더 발전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했다.
jiks7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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