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전국대학원생노조, 제보 사례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교수 자녀가 유치원 때는 함께 등하교하게 시키고, 초등학교 때는 그림일기를, 중고등학교 때는 독후감을 대신 쓰도록 했습니다."
직장갑질119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교수들의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한 '대학원생119'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대학원 내 '교수 갑질' 제보 사례들을 8일 공개했다.
사례를 보면 한 교수는 '방장' 역할을 맡은 선임연구원에게 대학원생들의 연구비(인건비) 통장을 모아 관리하게 시키고 프로젝트 연구비가 쌓이면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도록 했다. 교수는 이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을 인출해 자신의 통장에 넣게 하는 방식을 썼다.
대학원생 A씨는 "이런 방식으로 3년간 연구비 3천여만 원을 빼앗겼다"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학교를 떠난 한 선배는 5년간 교수에게 입금한 연구비가 8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이 교수는 연구비 갈취를 참다못한 대학원생들이 학교를 떠나겠다고 하자 "남아 있는 돈을 모두 보내라. 보내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이 학교에서 이런 식의 연구비 갈취는 최소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고 대학원생119는 전했다.
대학원생들을 자녀 학습에 동원한 교수도 있었다.
유치원 등원부터 그림일기·독후감 숙제 대행을 시키는가 하면 자녀의 대학원 입학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작성하게 한 교수도 있었다.
대학원 내 교수들의 갑질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17년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실시한 '대학원 연구 인력의 권익 강화 관련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97명 중 74.1%인 146명이 대학원에 갑질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77명(39.1%)은 교수의 우월적 지위와 인권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교수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62.4%(123명)는 진로 변경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번에 공개된 제보 중에도 피해사례를 학내 인권센터에 고발한 결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각종 연구에서 배제되고 교수로부터 논문 지도를 거부당한 사례가 있었다.
'대학원생119'는 "교수사회에 만연한 갑질과 비리의 책임은 교육 당국에 있다"며 "비리 제보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익명 제보를 통해 기습적인 감사, 무기명 설문조사 등을 벌였다면 갑질과 비위를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수 갑질 근절을 위한 교육 당국의 긴급 대책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교수님들께서도 앞장서서 대학원생들을 연구원으로 인정해 존중하고, 대학이 대학원생들과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원생119'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한편, 계속해서 대학원 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알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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