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정책에도 '남성 후견인 제도' 족쇄 여전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권 신장 정책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사우디 여성들은 남성 후견인 제도에 신음하고 있다고 영국의 BBC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우디는 실권을 잡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면서 여성의 차량 운전과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 관람 등이 허용됐고, 식당과 공연장 등 공공장소에서 남녀 공간을 구분하는 관습도 상당히 완화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가 여성 소방관을 처음으로 채용하면서 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제한됐던 여성의 활동에 숨통이 트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인권 운동가들은 이 같은 변화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아직도 사우디에는 남성 후견인 제도 같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장애물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남성 후견인 제도는 여성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아버지나 남편, 오빠, 아들 같은 남성 보호자의 허락을 받도록 한 제도다.
이는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 및 지지자다. 신이 한쪽에 다른 쪽보다 강함을 더 주셨기 때문이다"라는 쿠란의 경구에 대한 사우디 종교기관의 해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 탓에 사우디 여성들은 여권을 신청해 해외여행을 가거나 결혼할 때에도 남성의 승인이 없으면 뜻대로 할 수 없다.
이집트계 미국인 기자 모나 엘타하위는 BBC에 "(남성 후견인 제도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사우디 여성과 소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이 제도에 도전한 많은 여성이 구금되거나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도망친 인권 운동가 사마르 바다위는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불복종' 혐의로 고소를 당해 7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또 다른 운동가인 마리암 알오타이비 역시 같은 이유로 3개월 구금됐다.
해외로 도피한 여성도 남성 후견인 제도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디나 알리 라슬룸은 2017년 강제 결혼을 피해 필리핀에서 호주로 가다 붙잡혀 강제 귀환 조처됐고, 같은 이유로 호주로 망명하려던 10대 소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도 최근 태국에서 억류됐다. 알쿠눈은 현재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우디는 2000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을 비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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