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역사소설, 어렵다? 우리 선조들의 숨은 이야기"

입력 2019-01-09 14:00   수정 2019-01-09 15:17

성석제 "역사소설, 어렵다? 우리 선조들의 숨은 이야기"
역사소설 '왕은 안녕하시다 1, 2'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왕을 정점으로 한 엄격한 신분 제도와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사회를 지배했던 조선 시대.
기생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파락호 '성형'은 우연히 저자에서 만난 비범한 풍모의 꼬마와 의형제의 인연을 맺는다.
알고 보니 왕세자였던 꼬마는 얼마 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성형을 궐로 불러 자신의 비밀 측근으로 삼는다.
남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이는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 위태로운 왕위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왕.
그런 그의 안위를 위해 성형은 궁 안팎을 종횡무진 움직이며 각계각층 사람들을 영리하게 이용해 나라의 안정을 돕는다.
역사적 사건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작가는 시정잡배 출신인 성형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탈바꿈시킨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역사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역사 그 자체가 된 무명 또는 익명의 존재'를 조명하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성석제가 역사소설 '왕은 안녕하시다 1, 2'(문학동네)로 돌아왔다.
'투명인간'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로,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전반부를 연재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후반부를 새로 쓰고 전체를 대폭 개고해 완성했다.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이라는 바탕 위에 상상력과 유머, 특유의 재치를 한필의 비단처럼 촘촘히 직조해가며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 작가는 "역사소설은 생소한 장르라 입문할 때 난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돌파하면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2003년 '인간의 힘'이라는 조선의 선비였던 오봉선생 채동구에 관한 소설을 쓴 바 있지만, 역사 특정 시기를 무대로 한 본격적인 역사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소설에 등장하는 '연려실기술' 외에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청구영언', '인현왕후전', '박태보전', '박태보실기' 등 여러 역사서를 참고했다.
그는 이번 소설이 "이 땅에 살던 우리 선조들의 숨은 이야기"라며 "소설이니만큼 허구가 9, 사실이 1이고 나머지는 개연성으로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제도, 관습, 생활 등 시대상도 알아야 하고 인물에 더해 그들의 말, 행동도 다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바탕은 밑그림 정도고, 그 위에 그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순수한 허구에 가깝죠. 다만 '연려실기술'은 많이 인용했는데 이번 소설은 사실 '연려실기술'에 대한 오마주나 마찬가지입니다. 사관이 아닌 개인이 쓴 것이지만 깊은 인상을 받아 나만 알기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정치적 격변의 진통 속에서도 경제적 발전이 두드러졌던 숙종 대를 "이야깃거리가 풍부해 많은 작가가 매력을 느끼는 시대"라고 평가했다.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 등으로 갈려 당쟁만 일삼는 소설 속 무능한 신하들의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와 닮아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과거의 일에서 교훈을 얻으면 이를 따라야 하는 게 논리적인데 꼭 거꾸로 하곤 하죠. 이 좁은 땅에 살면서 같은 뿌리끼리 더 미워하고 죽이고 대를 이어가며 원수가 되는 것이 참 비극적이기도, 희극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과거와 다른 것은 그때 관리가 된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이 죽었죠. 하지만 지금은 한순간에 말을 바꿔도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 같네요. 정치인들에게 부디 반대편 당에 '소설 쓰지 마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그렇게 쉽게 써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인 그는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찰도 공유했다.
문학지가 아닌 네이버 카페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이번 소설을 연재했던 성 작가는 "원고료가 적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매체의 변화는 어쩔 수 없고, 앞으로 50년 안에 인류는 500만년 간 봐온 변화 이상을 겪을 것"이라며 "다만 알약만 먹어도 되는 시대에도 음식을 찾는 사람이 있듯이 스마트기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사회 비판 등에서 개인 성찰 등으로 바뀌는 소설 트렌드에 대해서도 "좋다고 본다"며 "체제나 시스템 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의 심지와 주체성이 전보다 강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거대담론의 시대가 물러가고 개인과 존재에 대한 서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소설 속 재치 넘치는 입담과 입에 착 달라붙는 표현들은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그에 대한 수식어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시킨다.
하지만 성 작가는 이에 대해 "영광이지만 잘못된 표현"이라며 "이야기를 잘하는 것과 문장을 잘 쓰는 것은 다르고, 나는 주변 많은 사람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잘 받아적는 사람"이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다음 흥미로운 이야기는 언젠가 그가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고구려 시대의 발명품 '박차'에 관한 것이다.
"이제 숙종 시대는 잊어버리고 7세기의 광활한 사막과 초원,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로 나가려 합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뒤돌아 활을 쏘려면 '박차'가 있어야 하는데 고구려에서 시작된 그 기술이 아시아 전반에 더해 북유럽까지 전파되면서 문명 차원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 밑바탕 위에서 거미줄처럼 이야기를 쳐나가려고 합니다. 물론 사실은 1, 나머지는 허구입니다."




bookman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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