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인생이 가해자 논리 뒷받침에 사용돼…다시는 미투 없도록 해달라"
안희정 "제 경험은 달라…상대의 인권과 권리를 빼앗은 적 없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피해자 김지은 씨가 "아무리 거대해도 인간의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며 안 전 지사를 엄벌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9일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김씨의 최후진술서를 읽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김씨는 최후진술서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피고인을 차기 대통령이라 여기고 그렇게 대했다"며 "사회 곳곳에 관계를 맺어 다각도로 생물처럼 뻗어 나가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피고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피고인을 상대로 '미투'를 한다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고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며 "하지만 죽더라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적었다.
1심에서의 증언 과정을 돌이켜보면서는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피고인이 기침 소리를 낼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고 정신은 혼미해졌다"며 "피고인이 옆에서 저를 압박하고 조여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범죄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내겠다 다짐하며 오한을 견디며 경험한 그대로를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힘겹게 피해 사실을 증언했음에도 "성실히 살아온 제 인생은 모두가 재판에서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됐다"고 김씨는 하소연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들인 저의 성실함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으로 인정받기 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받았다"라며 "일을 그만두고 캠프에 간 것은 팬심에 의한 것으로, 근무 시간의 제한 없이 일에 매진한 것은 피고인이 좋아서였다는 근거로 사용됐다"고 했다.
또 "전임 남자 수행비서들도 해왔던 일인 숙소 예약은 관계를 위한 '셀프 호텔 예약'으로, 피고인이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식당에 가겠다고 해서 통역인 부부와 동행한 레스토랑은 단둘이 간 와인바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피고인에게 가진 감정은)일반 직장인이 가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 애사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그러나 피고인은 저와 이성 관계였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제게 했던 성폭행 직후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고, 항상 다음 범죄를 위한 수단이었다"라며 "아직까지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누가 제게 미투를 상담한다면 선뜻 권유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말릴지도 모르겠다"며 "제가 경험한 11개월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위력으로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며 "막대한 관계와 권력으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지엄함을 보여, 다시는 미투를 고민하는 사람이 이 땅에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안 전 지사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어떤 경우라도 제가 가진 힘을 가지고 상대의 인권과 권리를 빼앗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는 "고소인의 주장과 마음은 그 마음대로 존중하고 위로하고 싶지만, 제가 경험한 사실들은 고소인의 주장과 상반된다"라며 "결과가 무엇이든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비서 성폭행' 안희정 "비공개 법정 말 못해"…마지막 공판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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