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오페라 클라이맥스'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깊은 강은 흔들림이 없다'란 말을 좋아해요. 저도 그렇게 잔잔하지만 울림이 깊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소프라노 황수미(33)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화려한 한복 드레스를 입고 '올림픽 찬가'를 부르며 세계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힘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목소리에 세련된 외모까지 지닌 그에게 공연계뿐 아니라 방송 쪽에서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스타'나 '차세대 소프라노' 등과 같은 수식어를 어색해했다.
최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금 보여주시는 관심은 정말 감사하지만, 이런 환영과 환대는 결국 제가 음악으로 갚아드려야 할 부분"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겉보기에 그의 성악가로서의 커리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서울대 음대, 독일 뮌헨 국립음대 등에서 수학한 그는 쇼팽·차이콥스키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에서 2014년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대학 시절을 슬럼프 속에서 보냈다.
"저도 동네에서는 나름대로 노래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요.(웃음) 서울대에 갔는데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힘들고 불안한 마음으로 4년을 보냈어요. 성악가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뮤지컬 오디션을 봤는데 1차에서 떨어졌죠. 아나운서 학원도 알아봤는데 등록비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고요."
그는 지금도 "노래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다만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라졌다.
"당시 힘들다고 늘 말하면서도 사실은 한 번도 죽을 힘을 다해본 적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4학년 때 집도 조금 휘청이면서 동요 레슨을 하고 다니며 스스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원 시절부터는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실에서 살았고요. 그러면서 콩쿠르에서 입상하기 시작했고 연주 기회도 주어졌어요. 결국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연습과 노력이 중요하단 것을 이제는 알아요."
그래서 황수미는 한순간에 활짝 핀 꽃보다 은은하고 깊은 향을 풍긴다. "크고 작은 일에 쉽게 흔들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게 언젠간 내게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그다.
작년 전속 가수로 활동해온 독일 본 극장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솔리스트 활동도 시작했다.
지난달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라보엠'에서 '미미' 역을 맡아 호평받았고 '가곡 반주의 왕'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의 데뷔 앨범도 녹음을 마쳤다. 리스트의 '페트라르카의 3개의 소네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브리튼의 가곡 등이 담길 예정이다.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오페라 클라이맥스' 공연을 연다. 오페라 '돈 조반니', '파우스트', '카르멘', '라보엠' 등 그가 가장 아끼는 오페라 속 아리아들을 엮어 들려주는 자리다.
"한국에서는 주로 가곡을 많이 들려드렸던 것 같아요. 가곡 연주에서는 섬세한 음악적 디테일이 중요하다면, 오페라 아리아에서는 극 중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감정 소모가 훨씬 더 큰 작업이기도 하죠."
그는 매해 다이어리 맨 뒷장에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죽 적어본다고 한다. 올해 역시 20가지 정도를 적었는데 "개인적인 것도 많다"며 웃었다.
"무엇보다 더 나아진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색깔을 찾는 것, 도전할 수 있는 대담한 무대에도 오르고 싶은 게 올해 제 소망이에요."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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