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교수, 환자별 뇌 회로 분석 도구 개발
올해 뇌전증 환자 대상 임상 추진…치매·파킨슨 등으로 확대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고장 난 스마트폰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야겠죠. 뇌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뇌 회로도를 파악해야만 병을 진단하고 제대로 치료할 수 있어요."
이진형(42·사진)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뇌전증(간질), 치매, 파킨슨병 등 뇌 질환을 정복하기 위해선 1천억개가 넘는 세포로 구성된 뇌를 완벽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비유했다. 공학도 출신인 그는 반도체처럼 뇌의 회로도를 만들고 분석해 뇌 질환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 의과대학·공과대학 교수로 뇌 과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젊은 연구자다. 라이나생명 50대 이상 세대의 삶의 질 개선과 건강 증진에 기여한 인물에 수여하는 '라이나50+ 어워즈'의 첫 수상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뇌 회로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치매와 파킨슨병 등 치료가 어려운 뇌 질환 치료에 희망을 준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근 이 교수가 짬을 내 한국을 방문했다.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창업한 엘비스(LVIS)의 한국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다. 엘비스는 이 교수의 뇌 회로도 개념을 기반으로 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등을 진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회사 이름은 뇌 회로를 '생생하게 시각화'(Live visualization)한다는 의미의 약자다.
이 교수는 "뇌 질환은 뇌 회로가 오작동하는 건데, 지금 상황에서는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알지 못해 진단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뇌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파악하는 뇌 회로도를 개념화해야만 뇌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도 뇌 회로도를 그린다는 건 작동에 대한 '알고리즘'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지 단순히 연결상태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고 부연했다.
그는 "뇌는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작동하기 때문에 뇌 회로도는 '완성'의 개념이라기보다 특정 부분이 고장 났을 때 질환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뇌전증 환자의 경우 외형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나 상담이 아닌 환자의 뇌를 분석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미 환자별 뇌 회로를 분석해 치료방법을 제안해주는 소프트웨어인 '뉴로매치'를 개발한 상태다. 뉴로매치는 지난해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뇌전증 환자 대상의 실험을 마쳤고,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구체적인 결과는 아직 대외비다.
이 교수는 "그동안 뇌 질환은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여러 약물을 사용하거나 환자와의 문진, 상담 등으로 짐작하는 수준이었다"며 "뇌 회로도 개념을 도입하면 환자마다 뇌 질환의 원인을 찾고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 이 교수는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올해는 상업화를 위해 뇌전증 환자 대상의 본격적인 임상을 시작할 방침이다. 임상은 미국과 국내에서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올해는 뇌 회로 분석 도구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신청을 위한 임상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해"라며 "뇌전증 다음 타깃은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환자의 뇌 회로를 분석해 적절한 치료법을 제시해주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신약 및 치료법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공학도에서 뇌 과학 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며, 뇌 질환 연구에 뛰어들었던 결정을 "지금도 매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전자공학으로 대학원을 졸업할 당시 뇌졸중으로 쓰러져 12년간 반신불수로 병상에 누워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더 굳게 다져왔다고 했다.
그는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작은 뇌혈관 하나가 터졌다는 이유로 평생 누워계셔야 하는 현실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때 직접 뇌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오랜 기간을 거쳐 이제 하나둘 성과가 나오고 있어 환자들에 실제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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