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속에서 표출되는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연극 '레드'

입력 2019-01-10 19:14  

세대갈등 속에서 표출되는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연극 '레드'
강신일 "내게 레드는 연기"…정보석 "이 작품 통해 구세대·신세대 어우러졌으면"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는 뉴욕 고층 빌딩에 들어설 고급 레스토랑의 벽화 작업을 의뢰받는다.
그는 자신을 돕기 위해 고용된 젊은 조수 '켄'과 피상적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인생에서 예술이 필요한 이유와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펼친다.
신세대를 대표하는 켄은 구시대 로스코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의 위선을 지적한다.
"자식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라며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파를 끝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로스코는 앤디 워홀 등으로 대표되는 팝아트를 "진지하지 않다"고 질타한다.
예술의 상업화를 비난하지만 3만5천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부자들만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의 벽화를 그린다.
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견고한 성처럼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던 로스코는 그의 편협하고 닫힌 사상을 당돌하게 지목하며 변화를 종용하는 켄을 "처음으로 존재했다"고 인정하고, 끝내 다시 "이제야 마크 로스코가 된다".




2010년 토니상 최다 수상작이자 전 세계 관객과 언론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연극 '레드'가 돌아왔다.
미국 작가 존 로건은 로스코가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40여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사건에 주목해 실제 일화들을 연극으로 재구성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신사실주의로 변화하는 과도기에서의 세대 갈등을 그리는 이 작품은 낯선 인문학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행동을 통해 이해도를 높인다.
10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강신일은 "소멸해가는 세대에 속한 만큼 그러한 면면에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고 다시 로스코를 연기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다섯번이나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은 "회를 거듭하면서 초연 때 미처 다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찾을 수 있게 돼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로스코 역에 더블 캐스팅된 정보석은 "처음 로스코를 연기했을 때 너무 힘들어 연극에 대한 트라우마로 작품을 못 했다"며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고 인물이라 아직도 잘 모르고 연기하고 있지만, 첫 공연 때보다는 로스코가 무엇을 고민했고 그림 속에 담아내고자 했는지 알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연극 제목이자 무대인 로스코의 작업실을 가득 메우는 '레드'는 한마디로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이자 열정이다.
강신일은 자신에게 '레드'가 무엇인지 묻는 말에 "연기"라고 답했다.
마크 로스코가 레드에 천착하고 그로부터 내면의 이미지를 창출하려고 했던 것처럼 자신은 연기가 자신 안에 감춰진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이번에 세번째로 켄 역을 맡은 박정복과 처음 '레드'에 참여한 김도빈은 "열정"이라고 답했다.
유튜브 등 짧고 가벼운 동영상이 주목받는 시대에 '레드'와 같은 진지한 주제의 연극은 마치 '켄'에게 도전받는 '로스코'를 보는 듯하다.
정보석은 "작품에서도 말하듯이 새로운 세상은 영원한 과정 중에 있고, 탓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며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문화도 소중하니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예전 것을 아예 보지도 못하는 것은 문제"라며 "각자 생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하자는 이 작품을 통해 어우러짐이 만들어졌으면 하니 많은 젊은 세대가 보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레드'는 한국에서 2011년 초연돼 지금까지 4번 공연됐으며, 2016년 공연 때는 객석 점유율 96%, 관객 평점 9.4점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의 연출을 맡은 김태훈 연출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레드'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며 "이번 시즌에는 더욱더 '본질'과 '진정성'에 집중하고 고민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번 연극은 '자연광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마치 동굴과도 같은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상연된다.
2월 10일까지 공연하며, 티켓 가격은 4만∼6만원이다.


bookman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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