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했어도 장하다' 베를린 달군 핸드볼 단일팀·응원단

입력 2019-01-11 06:13  

'패했어도 장하다' 베를린 달군 핸드볼 단일팀·응원단
독일과의 개막전서 100명 남북공동응원단 열정적 응원
슈타인마이어 獨대통령·남북 대사, 슈뢰더 전 총리 함께 관람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남자 핸드볼 남북 단일팀은 경기에서 대패했지만, 남북 공동응원단이 환호성을 보내는 모습은 마치 연전연승한 팀을 앞에 둔 듯했다.
10일(현지시간)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전 경기장은 관중석 1만3천500여 석이 꽉 들어찼다.
세계 최강인 자국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독일인들이 몰려든 것이다.
독일 국기가 넘실대는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경기장의 한 귀퉁이에 한반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남북 공동응원단이 자리를 잡았다.
1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다.
남북 단일팀의 국가로 아리랑이 연주됐다. 20명의 남북 선수들은 손을 마주 잡았고, 남북 응원단이 따라 불렀다.
경기 초반 조영신 단일팀 감독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조 감독은 경기 직전 취재진을 만나 "세계 대회 경험이 있는 선수가 2명 밖에 없는데…"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일팀 선수들은 얼어있는 듯했다. 초반부터 독일 팀이 앞서나가자 선수들은 '천천히'를 서로 외치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선발 라인업에는 북측 선수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단일팀에는 북측 선수 4명이 포함돼 있다.
7분이 지나고 나서 북측 선수 리경송이 코트에 발을 디디자, 공동응원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점수 차가 점점 벌어졌지만, 공동응원단은 여전히 축제의 현장에 있는 듯했다. 단일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응원단은 앉아있지 못했다.
코트 안에서도 남북 선수들은 하나 된 모습이었다. 리경송이 패스를 놓치고 고개를 떨구자 주장인 정수영이 다가가 어깨를 여러 차례 두드렸다.
탄식하던 리경송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교포 2세로 다른 교포 친구들과 경기장을 찾은 이건민(22) 씨는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선수들이 고생이 많았는데 우리 교포들에게도 큰 힘을 준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고향이 북한 지역이라는 이 씨는 "북측 사람들과 함께 응원해 너무 기쁘다"라며 "단일팀이 스포츠 행사이지만, 정치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측에서 온 응원단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8주년 기념 및 판문점 선언 축하 행사에서 북측 합창단으로 나왔던 김진의(14) 군이다.
김 군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감격스럽다. 통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교포 이지숙(73)씨는 "베를린에서 남북 단일팀을 보게 된 건 기적 같은 일로 통일도 기적처럼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시작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독일 관중이 단일팀과 공동응원단에 보내는 시선은 따뜻해 보였다.스포츠 산업 종사자인 레네 벡크(35) 씨는 "독일과 단일팀의 경기를 보게 돼 설레고 기뻤다"라며 "평창 동계올림픽에 가서 단일팀을 봤을 때 과연 진정한 진전이 이뤄지는 것인지 일회적인 이벤트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에도 단일팀을 이룬 것을 보니 남북 관계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도 언젠가는 통일을 이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핸드볼은 독일에서 겨울에 가장 인기가 많은 실내 스포츠다. 그만큼 이번 대회에 국민적 관심이 높다.
독일이 단일팀을 개막전 상대로 고른 것도 상징적 의미와 흥행을 감안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독일 측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았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앞줄엔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와 박남영 북한대사가 나란히 앉았다. 그 옆에는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를 잡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부인 김소연 씨, 독일 출신인 토마흐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정 대사와 박 대사는 사회자의 귀빈 소개 시 함께 일어나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승리는 독일팀이 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코트의 주인공은 단일팀이었다.
바흐 위원장과 남북 대사는 코트로 내려와 단일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격려했다.
취재진의 카메라는 11골 차의 대승을 만끽하며 퇴장하는 독일팀이 아닌 단일팀으로 향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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