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년] ① 화마가 삼킨 남일당 자리엔 거대한 '캐슬'

입력 2019-01-13 09:00  

[용산참사 10년] ① 화마가 삼킨 남일당 자리엔 거대한 '캐슬'
2009년 1월 20일 철거반대 망루농성 진압…화재로 경찰·세입자 등 6명 희생
참사현장에 30∼40층 주상복합 공사…"서둘러 철거해놓고 7년간 땅 놀려"
복어집 하던 철거민 호떡장사로 생계…뿔뿔이 전국 흩어진 남일당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김주환 기자 = 2003년 김영덕(63) 씨는 남편 양회성 씨와 함께 서울 용산에 '삼호복집'이라는 복요리집을 열었다.
일식 조리사인 남편 양 씨가 조리를 맡고, 김 씨는 손님을 맞았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들 부부는 꿈에 부풀었다. 갓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두 아들에게 물려줄 날을 생각하면 행복하기만 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꿈은 재개발 계획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2008년 말부터 추진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일대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을 위해 대대적인 상가 철거 작업이 시작했다.
"집까지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아 연 가게였는데, 재개발이 결정된 뒤 나온 보상금은 가게를 옮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어요. 그대로 거기서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김 씨는 그렇게 남편 양 씨가 4층짜리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라 5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을 풀어냈다.
남편을 잃은 뒤 김 씨는 두 아들과 숙대입구역 인근에 일식집을 차렸다. 꿈이 산산조각 나버린 상황에서 장사도 수월치 않았다. 김 씨는 남편 없이 차린 일식집 문을 눈물을 머금고 닫아야 했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부터는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구청 단속을 피해 다니다가 호떡 리어카를 끌고 김 씨가 찾은 마지막 장소는 참사가 발생한 곳 인근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자와 함께 참사 현장 인근을 찾은 김 씨와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의 눈빛에는 허망함이 어려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역을 마주 보고 있던 남일당 4층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점거 농성을 벌이던 농성자 5명과 이를 제지하던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 경사가 이 자리에서 숨졌다.
철거민 단체인 전국철거민연합회가 합세한 가운데 농성자들은 전날부터 건물 옥상에 올라 철거 용역과 경찰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으로 구슬 등을 쏘며 저항했다. 경찰은 건물을 봉쇄하고 물대포를 쐈다.
20일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올라탄 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양측의 대립은 격화했고, 당시 목격자들은 경찰의 진압이 시작된 지 40여 분만인 오전 7시 24분께 5m 높이의 망루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고, 1분도 안 돼 망루를 집어삼켰다고 전했다.
집채만 한 불길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4층짜리 건물이 있던 이곳은 10년이 흐른 지금은 30∼40층에 이르는 주상복합 빌딩 6개 동 신축공사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용산의 '00캐슬'로 오르내리며 몸값을 자랑한다.
이 사무국장은 높은 공사장 펜스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남일당 건물은 큰길가에 있었고, 그 뒤로는 저기까지 상가가 쭉 있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긴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 그렇게 서둘러 철거를 해놓고, 정작 시공사들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7년간 빈 땅으로 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서울시가 용산4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을 통과시키고 개발이 재개되면서 이 일대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사무국장은 "한때 부동산 업계에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근처 땅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빠르게 올라가는 건물을 볼 때마다 10년 전 참사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참사 전 용산4구역에 세 들어 살거나 장사를 하던 세입자들은 전국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이 사무국장은 전했다.
현재 관악구 봉천동에 살며 장사를 위해 다시 이곳을 찾은 김 씨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씨는 "참사 이후로 매년 이맘때면 온갖 언론사에서 용산 유가족들을 찾아온다"며 "하지만 2019년이 되도록 진상 규명은커녕 책임자처벌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진상 규명을 통해 김 씨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남편 양 씨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다.
김 씨는 "죽은 사람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은 벗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두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를 남겨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참사 이후 관련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돼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용산 참사 철거민들은 2017년 12월에야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특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경찰이 위험을 인지하고도 무리하게 진압한 탓에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고, 사망한 특공대원 김남훈 경사와 철거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경찰에 권고했다.
아직도 참사의 상흔을 생생히 기억하는 용산 참사 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는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참사 10주기 강제 퇴거 증언대회를 연다.
18일에는 조계종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용산 참사, 그리고 나'라는 주제로 10주기 추모의 밤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이어 19일에는 용산 참사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는 빈민대회를, 20일에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각각 범국민 추모제와 추모 미사를 연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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