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보도…"트럼프-푸틴의 최근 5차례 대면회담 기록한 문서 전무"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지난 2016년 대선 기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대면(face-to-face) 회담의 세부내용을 숨기려고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전·현직 미국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기록한 통역사의 노트를 최소 한 차례 '압수'했다.
노트 압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7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이 자리에는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도 동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통역사에게 당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다른 행정부 관리 누구와도 의논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은 백악관 고문과 국무부 고위 관리가 틸러슨이 공유한 녹취록 이외에 추가 정보를 파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전·현직 미 관리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버트 맥매스터를 포함해 백악관 관리들은 틸러슨은 물론 그 누구로부터도 함부르크 회동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WP에 밝혔다.
한 고위 전직 관료는 "녹취록을 확보할 수 없어 좌절했었다"며 "당시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고 합의하려 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함부르크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고위 러시아 관리들을 만나 테러 계획에 대한 비밀정보를 흘렸다고 WP 등 미 언론들이 보도한 지 몇 달 이후에 이뤄졌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정보) 통제 조치는 자신이 푸틴과 나눈 대화를 공적 수사로부터 차단하고, 심지어 행정부 고위 관료들마저 대통령이 미국의 주적(主敵) 중 하나와 나눈 대화를 온전히 알지 못하게 하려고 구사한 정형화된 전략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제보자들은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년간 5곳에서 푸틴 대통령과 대면해 나눈 대화의 상세기록들이 비밀문서 형태로도 남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보 공백'은 역대 어느 행정부를 통틀어 볼 때도 이례적이라고 WP는 논평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나눈 대화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이 없다 보니 관리들은 때때로 정보 당국이 크렘린의 반응을 추적한 보고서에 의존해야 했다고 WP는 전했다.
전직 미 관리들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주의가 전직 대통령들의 알려진 관행과 다르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은 고위 보좌관들에게 의지해 이들이 회담을 참관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받아 적은 뒤 다른 관리 및 부처들과 이를 공유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스트로브 탤벗 미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은 "푸틴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주의는 역사적 기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일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이런 행동 때문에 대통령을 도우려는 전문가와 보좌관, 내각의 관리들, 즉 미국 정부 자체가 불리해졌고 푸틴이 트럼프를 조종할 여지가 확실히 커졌다"고 주장했다. 탤벗 소장은 1990년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대통령 간 회동에 십여 차례 이상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일축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반박했다.
이 대변인은 틸러슨 전 장관이 당시 회담이 끝난 직후 관리들에게 자세한 자료를 비공개용으로 돌렸고 언론에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항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과 사적 친분을 형성하는 데 관리들 배석이 방해된다고 생각한다고 두둔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주의가 임기 초반에 불거져 자신을 곤혹스럽게 한 기밀 누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함부르크 회담 당시 배석했던 통역사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사로부터 통역 노트를 빼앗은 사례가 추가로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몇몇 관리들이 작년 여름 대통령이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과 비공개 회동을 했을 때도 믿을 만한 녹취록을 얻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주의가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도를 넘었다고 보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엘리엇 엥겔(민주·뉴욕) 하원 외교위원장은 외교위가 조사를 위한 소위원회를 꾸려 트럼프, 푸틴 대통령의 회동에 대한 국무부 자료를 제출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WP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함부르크 회동 때 처음부터 끝까지 배석했다고 밝혔으나 논의 내용, 노트 압수, 통역사에 대한 함구령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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