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 시민 품에 넘어온 뒤 첫 추모행사
영화 '1987' 장준환 감독·배우 김윤석 등 참석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보고싶다, 종철아"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조성 예정지(옛 남영동 대공분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형과 서울대 동기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이하 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하늘을 향해 외쳤다.
'보고싶다'는 외침이 울리자 박 열사와 아버지 박정기 씨의 영정이 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이사, 서울대 김다민 부총학생회장의 손에 들려 행사장을 가로질렀다.
두 사람의 영정은 미리 준비된 게양대 앞에서 멈췄고, 영정이 지켜보는 가운데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민주 인권'이라고 적힌 깃발이 높이 달렸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박 열사의 32주기를 하루 앞둔 이날 추모제를 열어 박 열사와 아버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관계자들은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의 손을 떠나 민주인권기념관 조성 예정지로 지정된 이후 첫 추모제인 점을 강조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 산하에 설립됐으며 대공 조사를 명분으로 30여년 동안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이후 폐쇄 여론이 거세져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으나 시민 품에 되돌려야 한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10민주항쟁 31주년 국가기념식 기념사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의 관리권이 행정안전부로 이관됐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운영하기로 결정됐다.
김세균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에 안겨야 한다는 캠페인이 열려 마침내 경찰이 이곳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며 "32년 만에 박종철 열사가 경찰 굴레에서 벗어나 (대공분실) 509호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열사의 형인 박종부씨도 "유족으로서 시민으로서 지난 세월 소망해온 것들이 조금씩 이뤄지는 것을 보고 있다"며 고마움을 담아 무대에서 행사 참석자들을 향해 큰절했다.
박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담은 영화 '1987' 장준환 감독과 김경찬 각본가, 배우 김윤석씨도 행사장을 찾아 열사의 뜻을 새겼다.
장준환 감독은 박 열사가 고문을 받은 5층을 올려다보며 "저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분이 그리움, 고통, 슬픔을 쌓아놓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많은 분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영화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김경찬 각본가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이곳에 와서 현장을 직접 보면서 박 열사가 여전히 남영동에 갇혀 계신 느낌을 받아 안타까웠다"며 "이제 비로소 박 열사가 시민 품에 돌아온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윤석씨는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얘기가 많지만, '하나의 불씨가 되고 생명력을 갖는다면 만족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1987년에 있었던 이야기가 2017년과 2018년, 2019년에 강하게 기억될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전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이날 장 감독을 비롯한 '1987' 제작진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에는 '2018년은 영화 1987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현장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또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는 박 열사의 형 박종부씨가 직접 작성했다고 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은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도 참석해 509호 대공분실에 놓인 박 열사의 영정에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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