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도레가 함께 빚은 '신곡'…새로운 고전이 되다

입력 2019-01-14 15:27  

단테와 도레가 함께 빚은 '신곡'…새로운 고전이 되다
한길사, 두번째 '큰책시리즈' 발간…'신곡'에 도레 삽화 135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발가벗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마다 안간힘을 쓰며 거대한 돌덩이를 지탱한다. 온몸에 돋아난 근육이 그 고통을 대신 말해준다. 발아래 흩어진 금화를 보고서야, 이들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황금으로 가득 찬 주머니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림 감상을 끝낸 눈은 책의 왼쪽 글귀로 향한다. "재화는 운명에 맡겨져 있건만, 인간은 그 짧은 바람 때문에 다투는구나. 달 아래 있는, 언제라도 있었던 황금을 전부 바쳐도 이 지친 영혼 중 하나라도 쉬게 할 수 있더냐."
"인간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괴테)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 걸작 '신곡'(La Divina Commedia) 지옥편의 한 장면이다. 탐욕과 인색에 찌든 이들은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
이 장면이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것은 19세기 프랑스 미술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 삽화 덕분이다. 훗날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등이 극찬할 정도로 빼어난 도레 삽화를 곁들인 '신곡'은 그 자체로 새로운 고전이 됐다. 도레 삽화는 이후 '신곡'의 거의 모든 판본에 실렸다.



단테 '신곡'과 도레 삽화 135점을 더한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 최근 한길사에서 출간됐다.
책은 세로 37cm, 가로 30cm 대형 사이즈로, 무게도 두꺼운 '벽돌책'도 울고 갈 만큼 무겁다. 한길사와 한길책박물관이 기획한 '큰 책 시리즈' 2번째 작업으로, 첫 권 '판화성서'와 마찬가지로 500부만 찍었고 가격은 25만원으로 책정됐다.
출판사는 한길책박물관에 소장된 1868년판 '신곡'을 저본으로 삼되, 단테 연구자인 박상진 부산외대 교수와 협력해 그림과 가장 어울리는 구절을 추출했다.
책은 지옥 75점, 연옥 42점, 천국 18점 등 총 135점의 삽화를 통해 단테가 상상한 내세를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23살에 '신곡' 삽화 작업을 시작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고 장대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다.
박 교수는 14일 중구 복합문화공간 동화문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응축된 시어와 완결된 그림의 세계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면서 "독자들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는 새로운 방식의 독서와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해설에서 "단테가 도레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시어는 마치 도레 삽화를 이미 그 자체로 내재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굉장히 차이가 남에도, 두 사람을 수평적으로 놓고 볼 수 있습니다. 도레가 단테로부터 일방적인 영향을 받아 작업한 관계가 아니라,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죠. 단테 글을 도레 그림을 통해 재해석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한길사는 '런던순례여행' '돈키호테' 등 도레가 삽화를 그린 다른 작품도 '큰 책 시리즈'로 곧 선보일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런 큰 책은 디지털적인 흐름에 반격을 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라면서 "걱정도 있었으나 판화성서 같은 경우는 큰 성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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