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담판 성과시 재집권 발판 될수도…2차 북미정상회담 분수령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훗날 22세기의 역사학자들이 '리얼리티 TV'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순간을 찾아 나서게 된다면 그들은 2018년 6월 12일(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날짜)을 지목할 것이다"
미국 시사지 디 애틀랜틱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 2년을 돌아보며 쓴 '도널드 트럼프, 대북 리얼리티 쇼의 주연을 맡다'는 기사의 맨 앞머리이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2년간 대북정책만큼 롤러코스터 같은 극적인 변화를 겪은 분야도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때 전쟁 위기론을 낳을 정도로 극한 대치를 한 북미는 정상 간 역사상 첫 대좌이자 '세기의 회담'으로 불린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대전환점을 맞으며 180도 급반전을 이뤘다. 그 뒤 몇 개월간의 부침을 거쳐 북미 정상은 다시 2차 핵 담판의 문 앞에 서게 됐다. 오는 20일(현지시각)로 취임 2주년을 맞는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현주소이다.
첫 임기의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로 들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북정책 및 북미 관계의 향배에 따라 지난해 '입구'를 연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의 항로도 좌우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를 표방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집권 초반부터 '해결사'를 자임하며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대북제재와 이를 통한 전방위적 고립 작전으로 북핵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이 트럼프 정부 대북정책의 키워드이다.
취임 첫해인 2017년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발사·핵실험 등이 세게 부딪히면서 북미 간 긴장은 갈수록 고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겐 '로켓맨' 등의 격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강력한 대북 경고장을 날렸다. 여기에 제한적 선제 타격론인 '코피 전략'(bloody nose strategy)을 비롯한 군사옵션이 미국 내에서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계속 거론되면서 전쟁 위기론으로까지 치닫는 흐름이었다.
북미 간 전운은 지난해 1월 1일 김 위원장의 신년사("핵 단추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으로 오간 이른바 '핵 단추 설전'으로 최고조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대반전의 서막이기도 했다.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조성된 해빙 무드와 맞물려 북미 관계에도 대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북미는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이자 북미 협상 '키맨'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북(1차 지난해 3월 말∼4월 초, 2차 5월 9일)과 그의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미(지난해 5월 말∼6월 초) 등을 거치며 긴박하게 움직였다. 북한의 대미 급랭 모드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취소' 통보로 한차례 급격하게 판이 출렁이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1차 정상회담을 개최, 북미 관계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북미 간 70년 적대관계 청산과 한반도 비핵화의 첫발을 떼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됐지만, 이후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해 7월 6∼7일 3차 방북은 종전선언-핵 신고 요구를 둘러싼 북미 간 대치로 인해 '빈손 방북' 논란 속에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폼페이오 장관의 10월 7일 4차 방북으로 대화의 불씨는 다시 살아나는 듯했으나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의 11월 8일 북미고위급 뉴욕 회담이 북측의 요청으로 막판에 무산되는 등 북미 간 대화는 '제재 갈등'에 가로막혀 답보 상태를 이어갔다.
교착 상태에도 불구,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북미 간 공감대 속에 북미 정상이 연초 친서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주고받은 '톱다운 소통'으로 다시 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핵 담판이 가시권 내로 진입한 상태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조율할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의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가 임박한 가운데 2차 핵담판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 간 주고받기가 어떤 식으로 귀결되느냐가 이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의 속도와 폭을 좌우할 최대 관건으로 꼽힌다.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관여 정책을 현 행정부의 대외 분야 최대 성과로 꼽고 있는 만큼, 현재로선 남은 집권 후반기에도 대화의 틀을 살려가는 현 기조는 일단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현 대화 국면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가면서 추가적인 비핵화 성과 견인을 시도, 재집권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임 행정부들이 수십년간 이루지 못한 것을 몇달 만에 이뤄냈다", "북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자신하며 김 위원장과의 '케미'를 자랑해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당장 퇴로가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면적 궤도수정은 대북 성과를 자랑해온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하원 장악으로 대북 관여 드라이브 속도에 대한 견제와 관리·감독 움직임이 강화되는 분위기인데다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수 있어서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채로 장기화할 경우 자칫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초반의 속도전에서 탈피, 일찌감치 '비핵화 시간표'도 거둬들이긴 했지만, 비핵화 협상을 조기에 본궤도에 올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목표를 향해 일정 정도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미·중이 무역 문제를 비롯, G2(주요 2개국) 간 패권 경쟁 속에 한반도 주변 질서를 둘러싸고도 갈등과 협력의 역학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북·중 밀착과 이와 맞물린 중국의 역할론도 이후 북미 간 비핵화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다가오는 2차 핵 담판에서 김 위원장을 설득,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성과를 끌어낼 수 있느냐가 집권 3차에 접어든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방향타를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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