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7일 미국 워싱턴 DC로 향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북·미 고위급 회담을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가능성도 크다. 지난해 11월 8일 예정됐던 뉴욕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후 2개월여만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가 논의되고, 공식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교착상태이던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게 된다.
북·미 관계가 지난해부터 정상 차원에서 '톱다운'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된 점에 비춰본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로 양자 관계는 더욱 진전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번 고위급 회담과 정상회담에서 핵심 의제인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 어떤 합의를 이룰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의 내용과 시간표가 조율되는 담판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가 좌우되는 분수령이다.
고위급 회담이 연기돼 온 것이 의제에 대한 쌍방의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만큼 오랜 줄다리기 끝에 회담이 성사된 것에 비춰볼 때 북·미 간에 비공개 접촉을 통해 일정한 접점을 찾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종전선언이나 대북 제재완화에 앞서 '핵 리스트 신고'를 요구했고, 이에 반해 북한은 쌍방의 단계적·동시적 행동으로 맞서면서 협상은 공전해 왔다. 관건은 미국이 '선 핵 폐기'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단계적 비핵화 접근법으로 선회했느냐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의 다양한 카드들을 균형 있게 조합하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쌍방의 신뢰를 구축하면서, 더 큰 비핵화 조치와 관계 정상화의 수순으로 향하는 흐름에 대한 공감대 여부가 이번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 영변 핵 시설 및 동창리 미사일 기지 폐기와 사찰 등을 취하고, 미국은 상응 조치로 종전선언, 평양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인도적 지원 허용, 대북제재 일부 완화 등을 교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궁극적 목표인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 수교 등에 이르기엔 아직 모자라지만, 이런 합의라도 제대로 이행될 경우 한반도 질서의 평화로운 재편을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스몰 딜'을 거쳐 '빅 딜'로 향하는 실용적 접근을 고려할 때다. 미국은 일방적 비핵화 조치 이후 북한이 우려하는 불안감을 이해해야 하고, 거꾸로 북한은 과거 협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우려를 고려한 보다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를 검토했으면 한다.
방미하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워싱턴 DC로 직행하는 경로를 택한 것은 눈여겨볼 점이다. 북한 고위 인사의 워싱턴 직행은 처음이다.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은 샌프란시스코를, 지난해 김 부위원장의 1차 방미 때는 뉴욕을 경유해서 워싱턴으로 향했다. 무산됐던 지난해 11월 고위급 회담 장소는 뉴욕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2박 3일 워싱턴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의 허가로 이뤄진 김 부위원장의 워싱턴 직행과 체류는 정치 외교적 의미가 없지 않다. 회담 결과로 거론되는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와도 연결지어서 생각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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