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왜곡된 4·3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일을 했을 뿐입니다."
부당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4·3 생존 수형인의 재심을 가까이서 도운 양동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는 17일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무죄 판결에 기뻐하며 이같이 말했다.
양 대표는 수형인명부를 바탕으로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을 모아 '불법 군사재판 재심' 재판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이 수형인명부를 발견할 때만 하더라도 (이 사안이) 재판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양 대표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 4·3특별법)이 1999년 제정됐을 당시 온 역량을 제주 4·3특별법에 쏟다 보니 수형인명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임에도 인력이 부족해 바로 대응하기는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듬해인 2010년 5월에야 비로소 4·3 수형인들이 수감됐던 전국의 형무소를 돌면서 조사하는 전국 4·3유적지 순례사업을 시작했다.
또 이름과 나이·직업·형량·수감형무소가 대상자별로 각 하나의 열(列)로 기재돼 있는 수형인명부가 알아보기 쉽지 않고 관련 조사를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어 마을별로 정리해 하나의 책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해마다 순례사업을 진행하던 중 생존해 있던 수형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도민연대 차원에서 2013년부터 명부에 기록된 2천350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양 대표는 "기록에 명백하게 있는 내용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서 무슨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겠느냐"며 "국가권력의 잘못을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가지고 사실관계를 증명한다면 이것도 유익한 수단, 무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일단 살아있는 피해자를 모으기 위해 애썼다.
2015년까지 40명 정도의 제주4·3 생존 수형인을 찾았고, 연구조사를 계속해서 진행하던 사이 2년여만에 7∼8명이 세상을 떠났다.
현창용(88) 할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 양 대표에게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심어줬다.
현 할아버지는 1948년 9월 26일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임의로 작성된 조서에 지장을 찍었다.
죄명은 내란죄였다.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인천형무소에서 복역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도망쳐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제주로 내려오던 중 인민군에게 잡혀 개성으로 끌려갔다. 이후 간첩 혐의에 연루돼 20년형을 살았다.
현 할아버지는 "양 선생, 재판하게 해줘"라고 짧게 말했고 양대표는 이내 "합주!"('하겠습니다'의 제주 방언)라고 화답했다.
양 대표는 "이분들이 겪은 역사가 너무나 안타깝다"며 "이번 재판 결과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의 결정적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4·3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첫째도 진상규명, 둘째도 셋째도 진상규명이다. '4·3'이 단순한 학살, 피해의 역사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신 것처럼) 제주도민 스스로 진실을 찾아 바로잡았다는 역사의 과정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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