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실험으로 '판소리 진화' 이끌어…"좋은 배우로 남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판소리란 전통 재료로 이 시대의 이야기와 감각을 담아내 보려 몸부림쳤죠. '이게 창극이다, 아니다' 논란도 많았지만 제가 걸었던 방향만큼은 옳았다는 확신이 있어요."
김성녀(69)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18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행복한 일꾼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국립창극단을 이끌어온 그는 이르면 이달 말로 예상되는 새 예술감독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단체를 떠난다.
김 감독은 지난 7년간 '창극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수장을 맡은 이후 국립창극단은 연극과 뮤지컬, 서양 고전 등 외부 장르와의 만남에 과감히 나서 관객과 접점을 넓혔다.
어르신들이나 보는 고루한 장르로 인식돼왔던 창극 공연에 젊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 내용을 기반으로 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유럽의 공연예술축제에 잇따라 초청되는 쾌거를 거뒀다.
사무실 벽에는 그동안 올린 공연 포스터마다 '만원사례'라고 쓰인 봉투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유료 관객 80% 이상 공연에서 객석이 매진된 경우만 세었다는 데도 봉투가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이 같은 파격에 늘 호평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실험적인 도전을 두고 '전통이 아니다'란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뒤 첫 작품으로 선보였던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이 대표적이다. 공연 도중 '이게 무슨 창극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관객들이 있었을 정도다.
그는 "작품마다 완성도는 다를 수 있지만, 이 시대와 함께 가고자 했던 방향성은 옳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창극은 20세기 들어 1인극 형태의 판소리에서 파생된 장르에요. 창극 탄생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창극은 더욱더 이 시대와 함께 가야 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욕먹는 건 두렵지 않아요. 전 창극이 더 많은 시도와 실패 속에서 이정표를 더 정확히 세울 수 있길 바랍니다. 더 큰 성공을 맛보길 바라고요."
그는 이제 단체장 직함을 떼고 '배우 김성녀'로 돌아간다. "무대에서 태어났고 무대가 놀이터였다"고 말하는 그다.
여성국극 스타였던 모친과 극본가이자 연출가였던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천막극장서 데뷔한 이후 마당놀이와 연극, 창극과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 연기를 펼쳐왔다.
그는 최근 자신의 대표작인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에 이어 두 번째 1인극 '맛있는 만두 만드는 법'에도 출연했다.
'벽 속의 요정'에서 앙증맞은 5살 꼬마부터 교복 입은 여학생,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 아버지까지 1인 32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자식을 잃은 엄마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아직도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안 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제 모습이 좋아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끄는 배우가 아니라, 제 모습에 스스로 반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원한 현역으로 뛰어야죠. (웃음)"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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